[워싱턴 읽기] 기독교 복음주의자의 정치 유산
정치 목사로 알려진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의 제리 폴웰 목사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면, 로버트슨 목사는 복음주의에 가깝다. 이들은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에 적극 참여했다. 세계적인 복음주의 부흥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인 프랭크 그레이엄 목사도, 풀웰 목사의 아들인 제리 폴웰 Jr 목사도 2016년 뿐만 아니라 2020년 대선 때도 트럼프를 적극 지지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정치의 가장 큰 불행은 낙후 지역으로 꼽히는 남부로 그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전체 득표에서는 조지 부시 후보보다 50만표 이상 많았으나 선거인단 수에서는 부시가 271대 266으로 이겼다. 당시 부시는 남부와 서부를 중심으로 30개 주에서 이겼고, 고어는 동부와 중서부의 21개 주에서 이겼다. 고어는 남부에서 32%의 득표율에 그쳤지만 부시는 66%를 기록했다.
남부는 표 쏠림 현상이 뚜렷하고 투표율도 동북부 지역보다 훨씬 높다. 남부는 오랫동안 보수주의의 주요한 축이었던 남부 전통주의와 기독교 우파의 근거지다. 남부가 미국 정치권의 주도권을 쥐었다는 말은 남부 전통주의와 기독교 우파가 정치적인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기독교 우파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치권은 종교적 근본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선거 때마다 기독교 우파를 적절하게 활용한 후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리를 해 왔다.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텍사스 출신의 조지 H 부시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승리한 레이건 대통령도 당선 후에는 기독교 우파와 적당하게 거리를 뒀다.
기독교 우파는 1986년부터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폴웰 목사의 ‘도덕적 다수’가 그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보다는 다소 유연한 복음주의자를 자처했던 로버트슨 목사는 1988년 대통령 선거 출마 당시 아예 목사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공화당의 첫 경선이 열렸던 아이오와에서는 조지 부시를 제치고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 경선에서 3위를 차지한 로버트슨 목사는 전당대회에서 조지 부시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이후 그는 기독교 복음주의의 정치세력화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기독교연맹을 창설해 기독교 우파의 정치 참여에 매진했다. 로버트슨 목사는 기독교 TV 방송인 CBN(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을 성장시켰다. ‘700 Club’의 TV전도사로 유명해진 로버트슨 목사는 복음주의 교단하에 학교와 병원. 그리고 미디어를 세웠다. 교회와 사회의 중간지점에서 기독교 우파를 배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 것이다. 로버트슨, 풀웰, 그레이엄 등 세계적인 TV 부흥 목회자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우파가 대중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기독교 우파는 처음엔 근본주의가 중심이었으나 나중엔 좀 더 유연하고 대중적인 복음주의가 중심이 되었다. 기독교 우파 정치 세력은 드디어 1994년 중간선거에서 뉴트 깅그리치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의 승리를 끌어냈다. 수십 년 만에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기독교 우파는 기독교 가치를 훼손한다며 이민을, 성경에 위배된다며 동성애에 반대한다. 그리고 기독교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남부지역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그들은 생명 옹호를 이유로 낙태권에, ‘절제옹호’를 내세워 성적 자유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이다. 또 여성운동에는 ‘가족옹호’라는 구호로 반대하며 보수주의 운동을 통일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특권은 없고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며 ‘약자보호법(Affirmative Action)’도 반대한다. 아울러 진화론을 배격하고 학교에서 창조론 교육을 주장한다.
기독교 우파는 2016년 선거 당시 ‘우리의 대변자는 아니지만 우리의 목표를 관철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트럼프를 앞장서 지지했다.
미디어 왕국을 건설하고 그것을 통해 기독교 우파를 정치세력화한 로버트슨 목사는 숨졌지만 그의 유산은 분열과 증오의 ‘트럼프 정치’로 남겨졌다. 과연 예수 정신이 핵심인 기독교의 길인가?
김동석 /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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