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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웅전] 주먹으로 제방 막은 네덜란드 소년

1910년 멸망한 나라가 1945년 해방되니 모두가 애국자였고 민족주의가 최고의 가치였다. ‘역사의 국유화 시대’와 ‘만들어진 애국주의’가 온 천하를 강타했다. 모든 교과서 뒷장에는 ‘우리의 맹서’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판권과 함께 찍어 배포했다. 누구인들 한때 민족에 대해 가슴 뜨거웠던 시절이 없었을까.
 
그와 같은 집단최면으로 나타난 현상이 초등학교 사회생활 교과서에 실린 ‘구멍 난 댐을 손으로 막아 조국을 구출한 네덜란드 소년의 신화’다. 나는 1986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길에 네덜란드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 제방을 보고 싶었다. 그 소년은 그 뒤에 어찌 됐는지 궁금해 그곳을 직접 찾아갔다. 25㎞에 이르는 제방은 장엄했고, 제방 위에서 바라보니 왼쪽 바다가 오른쪽 육지보다 현저히 높은 것도 기이했다. 그 제방을 축조한 인간의 능력 앞에 숙연함을 느꼈다.
 
현지 안내원에게 그 소년의 뒷이야기를 물어봤더니 난색을 보였다. 그는 “이곳을 찾아오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이제 대답하기도 지쳤다”면서 “무너지는 제방을 소년이 주먹으로 막는다는 것이 과연 있을 법한 일이냐”고 되물었다.
 
요컨대 역사에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 그 이야기는 미국 동화작가 닷지(Mary M Dodge)의 소설 『한스 브링커의 은빛 스케이트』(Hans Brinker or the Silver Skate, 1895)에 나오는 우화였다.
 


그런데 그 뒤에 대학 강의 중에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자기도 가봤는데, 그 소년의 동상이 서 있더라고 했다. 기가 막혀 네덜란드 문화원에 문의했더니,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차원에서 연전에 소년의 동상을 만들어 세웠다는 대답을 듣고 허허 웃고 말았다. 허구에 찬 우리의 애국주의가 남의 나라 역사까지 바꾸는 세상이 됐으니 뒷맛이 씁쓸하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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