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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만에…히로시마 피해자들 “한일 정상 공동참배, 감개무량”

"뉴스를 보고 너무 기뻤어요.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같이 히로시마(広島)에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감개무량하죠."

재일동포 원폭피해자 박남주(91)씨가 18일 일본 히로시마 자택에서 78년 전 원폭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18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만난 재일동포 원폭 피해자 박남주(91) 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방일하는 윤 대통령은 19일 히로시마를 찾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78년 전 원자폭탄 투하에 피해를 입은 동포들과 만난다. 21일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평화공원 내에 있는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를 참배할 예정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강제징용 등으로 이곳에 온 5만여 명의 조선인이 피폭을 당했다. 당시 3만여 명이 사망하고 2만여 명이 생존했다. 생존자 중 1만 5000명은 귀국했는데, 박 씨 가족은 행방불명된 외삼촌을 찾기 위해 귀국을 포기하고 히로시마에 남았다.

피폭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 씨는 두 동생과 함께 노면전차를 타고 있다가 원자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전차에서 내려 하염없이 걷다 언덕에 올랐는데 히로시마(広島)라는 도시가 순식간에 사라져있었다. 그때의 공포는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울먹였다. 이어 "히로시마에 남은 원폭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일본에 사는 교포들은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 살기가 힘들어진다"면서 "양국이 영원히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나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 참배, 사죄의 뜻 담겼을 것"
18일 오전 히로시마평화공원에서 만난 권준오(71) 재일민단 히로시마본부 원폭 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도 "양국 정상이 위령비를 찾아주길 오랫동안 기다렸다. 너무 감사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세워진 지도 53년이 지났지만 한국 대통령의 위령비 참배는 처음이고, 일본 총리로서는 1999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총리 이후 두 번째다.

18일 권준오 재일민단 히로시마본부 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 히로시마평화공원 내에 있는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권 부위원장은 "두 정상의 위령비 참배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일보 전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직접 사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우리 생각은 그렇지 않다"면서 "기시다 총리가 위령비에 참배하는 것은 '사의'(사죄의 뜻)가 담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폭 후 한국으로 귀국했던 원폭 피해자 12명과 피해자의 2세 2명도 윤 대통령의 G7 정상회의 참석을 기념해 히로시마를 찾았다. 정원술(80) 한국원폭 피해자협회 회장은 18일 오후 히로시마 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위령비를 참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쁨과 반가움을 이길 수 없어 회원들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이어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간 피폭자들은 양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면서 국내 피폭자 문제에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주길 호소했다.

18일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원들이 일본 히로시마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협회의 심진태(80) 합천지부장도 한·일 정상의 참배 소식에 "한없이 기쁘고, 감정이 벅찼다"면서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미국인만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하고 위령비를 함께 참배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원폭 투하 78년이 지났지만, 한국에는 위령비조차 없다"면서 "대통령이 (협회 주최로 매년 한국에서 열리는) 우리 위령제에도 참석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희.김현예.황수빈(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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