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되거나, 좀비 된다"…동네 갑부라던 주유소 처참한 근황
1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있던 한 주유소 자리(660㎡)에는 지난달 문을 연 2층짜리 스타벅스가 성업 중이었다. 대형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손님이 몰리는 이른바 ‘항아리 상권’으로 유명했던 곳이지만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다가 2020년 문을 닫았다.
이후 여러 차례 손바뀜 끝에 239억원에 팔렸다. 지금은 지상 8층짜리 빌딩이 지어졌고, 보증금 2억원에 월 임대료만 1500만원 안팎인 알짜배기 상권으로 탈바꿈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은 환경 정화와 공사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주유소 자리에 새로 빌딩을 짓는 게 훨씬 돈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강남권엔 빌딩 올리지만…입지 따라 극과 극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52%(2019년)였다. 식당(15%)이나 도소매업(4.1%‧이상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업계 관계자는 “리터(L)당 1원이라도 싼 곳으로 손님이 몰리면서 여전히 제 살 깎아 먹기 식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전체 주유소 중 12%(1308개)에 이르는 알뜰주유소도 위협 요소다. 박동위 한국주유소협회 차장은 “이들은 입찰을 통해 기름을 공급받다 보니 일반 주유소보다 휘발유를 L당 40원가량 저렴하게 팔고 있다”며 “정부 정책 변화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나마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서울 등지에선 폐업하고 빌딩을 세우거나, 세차·전기차 충전기 같은 부대시설을 설치해 살길을 찾고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5년 동안 폐업한 서울 강남구의 주유소 12개를 전수 조사했더니 4개는 이미 새 건물로 바뀌었다. 3개는 공사 중이거나 공사 예정이었고, 2개는 오피스텔 홍보관과 주차장 등으로 영업 중이었다.
강남구 삼성중앙역 인근 오천주유소(706㎡)는 요새 철거 공사가 한창이다. 유니온약품이 이 부지를 2220억원에 사들였다. 청담동 경원주유소 부지(628㎡)도 540억원에 팔려 연구개발센터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문 닫는데 최대 5억”…‘좀비’ 된 곳도
휴업 주유소는 지방에 몰려 있다. 지난해 기준 전라북도에선 100개 중 6.5개가 휴업 중이었다. 최근 5년 새 강원도 내 전체 주유소 중 5.1%가 휴업했다. 대개는 고속도로 신설로 국도 이용이 급감한 곳이다. 지난 2020년 SK네트웍스로부터 전국 주유소 187개를 1조3000억원에 사들인 코람코자산신탁은 최근 지방 주유소 20여 개를 정리한 바 있다. 서울은 대신 폐업률(최근 5년 평균 3.8%)이 가장 높았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자금난으로 휴업과 영업을 반복하는 ‘한계 주유소’가 1000개에 육박한다고 추정한다.
“7년 내 전국 주유소 4분의 3이 퇴출”
정부의 ‘탈정유’ 에너지 정책에 대비해 주유소의 사업 다각화와 폐업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동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양오염 예방 같은 공익적 측면에서 폐업 지원 등 효율적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각 사마다 물류 거점화를 추진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주유소와 상생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김수민.고석현(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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