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Superdawg의 75년
이 핫도그 판매점은 1948년 5월 9일 시카고에서 시작됐다. 올해로 정확히 75주년이 되는 셈이다.
그 동안 수퍼독은 패밀리 비즈니스의 전통과 시카고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표적인 시카고 핫도그로 명성을 지킬 수 있었다.
시카고의 핫도그라고 하면 흔히들 맥스웰 스트리트의 폴리시 소시지나 포틸로스의 핫도그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맥스웰 스트리트의 폴리시 소시지는 다운타운에 고속도로 인근에서 24시간 영업을 하면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포틸로스는 노점에서 시작해 현재는 타 주로까지 진출하면서 이탈리안 비프나 키 라임 파이와 같은 인기 메뉴가 인기다.
이에 반해 수퍼독에서는 독특한 드라이브 인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그리 넓지 않은 매장에서도 음식을 주문할 수 있지만 보통은 차에 탑승한 채로 핫도그를 주문한다.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와 같이 차례로 드라이브 인 코스를 따라 움직이며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음식 주문 키오스크에 차를 주차를 한 뒤 오디오 장치가 연결된 기기에 주문을 하면 종업원이 해당 음식을 직접 가져다 주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고 구닥다리인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여전히 수퍼독은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수퍼독을 처음 연 사람은 2차대전 참전용사 출신 부부다. 모리 버만이 그 주인공인데 그는 고등학교 동창인 플로렌스와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노스웨스턴대학 졸업생으로 모리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공인회계사로 일할 계획이었고 플로렌스는 시카고공립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참전용사들이 시카고로 복귀한 뒤 사회에 복귀하기 위한 방편으로 핫도그 판매점을 오픈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도 시류에 맞춰 핫도그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장소는 당시 운행하던 전철의 종착점이었고 시카고와 서버브의 접경지대였던 밀워키와 디본/네이글 길로 잡았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 했기에 통행량이 많은 도로가 최우선 장소였다. 그리고 이들은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눈길을 잡아야 했기에 거대한 마스코트를 만들게 된다. 자신들을 소시지로 형상화한 핫도그 아이콘이다. 지금도 이 아이콘들은 시카고와 윌링점에 모두 남아 있다. 높이만 12피트에 달하는데 하나는 모리를 상징하는 두 팔을 들고 있는 크고 두꺼운 소시지고 다른 하나는 플로렌스를 상징하는 얇고 팔을 모은 소시지다. 두 소시지는 지나가는 손님들을 향해 눈을 깜빡이거나 윙크를 했다. 업체 이름은 당시 유행하던 프랑크푸르터나 레드 핫 대신 수퍼 히어로에서 착안한 수퍼독으로 정했다.
수퍼독은 문을 연 직후부터 시카고언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모리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그들만의 비즈니스를 이어가기로 한다. 여름철에만 열었던 영업시간은 연중 오픈으로 확장했다. 시그니처 메뉴는 역시 수퍼독으로 불리는 시카고 스타일 핫도그. 파피 시드가 뿌려진 번 안으로 큼직한 소시지가 들어가 있고 짭짤한 오이 피클과 고추가 곁들여져 있는 핫도그가 프렌치후라이와 같이 나오는 메뉴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케첩은 들어가지 않는다.
처음 문을 연 당시에는 수퍼독과 음료수 세트가 고작 32센트였다고 한다. 이후 1950년대부터 마이크와 스피커 주문 체계를 갖추며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1999년 디본점은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보다 세련되고 고객들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고 2010년 1월에는 2호점인 윌링점도 오픈하게 됐다. 현재도 모리와 플로렌스 부부와 세 자녀 부부, 손주들이 함께 수퍼독을 운영하고 있다.
오랜 시간 시카고언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수퍼독이 드라이브 인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 꼽힌다. 다른 핫도그 매장처럼 매장 안팎에서 먹는 경우와 달리 차 안에서 핫도그를 먹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시카고 주민들은 수퍼독과 관련된 훈훈한 추억을 갖고 있다. 학생들은 스포츠 경기나 학교 행사가 있은 후 수퍼독에 들러 핫도그와 밀크 쉐이크,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을 받았다. 수퍼독에서 소개팅을 하거나 매장 밖에서 프로포즈를 했다는 경험이 개장 75주년을 맞아 다수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수퍼독은 단순한 시카고 맛집을 넘어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알게 모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인식이 구닥다리로 여겨지는 마이크-오디오 시스템을 통한 주문이 계속되고 트레이드 마크가 된 12피트 높이의 소시지상 두 개와 네온 장식 등이 시카고언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게 한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최첨단 기술과 혁신으로 무장한 비즈니스가 생기더라도 이런 추억의 명소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의 파고가 거세도 시카고 삶의 일부분이 된 수퍼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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