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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날은 간다

봄날엔 빗장을 풀고 / 깜깜한 고요 속에 / 세상 작은 기척처럼 살아가는 것이지요 // 파아란 하늘 닮은 푸른 계절 / 나무마다 수 천의 싹을 품고 가는 것이지요 // 봄날을 사랑해 / 소리쳐도 들리지 않으니 / 온 몸으로 앓고 있는 너를 안고  잠드는 것이지요 //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 봄날은 이렇게 지나가는데 // 꽃 피운 대견에 맺히는 눈물이야 어쩌리요 / 외롭게 만나는 아픔이야 어쩌리요 / 한 밤을 지내 두 밤을 깨어도 소식 없는 봄날 / 흥얼거리는 슬픈 노래는 낸들 어쩌리요 // 봄날은 향기로워, 저 별처럼 / 수 백 광년 손짓하여  피어나는데 / 저 너머 연두로 풀어져 세상 어느 구석까지 / 봄날은 그렇게 부딪치며 살아나는 아픔이려니 / 애간장 타들어가는 몸짓이려니 / 미련 없이 아련한 봄날이려니
 
[신호철]

[신호철]

 
에곤 쉘리의 ‘오렌지색 옷을 입은 여인‘은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던지는 날카롭지만 몽환적 눈길이 매혹적이다. 30살을 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천재화가. 그의 대부분의 그림의 대상은 여자이다. 그는 다른 화가들의 관념을 뛰어넘어 전혀 예기치 못한 적나라한 포즈와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치부를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그의 그림을 접할 때마다 그의 그림 속에 꿈틀거리는 익숙하지 않은 본능적 태도와 거침없이 표현되는 언어들을 발견하곤 한다.  
 
일상을 그저 지나치는 풍경 정도로 여기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나의 내면은 말라가고 나의 걸음은 시간을 쫓아 허둥되어질 것이다. 에곤 쉘리의 그림 속에서 본능적 태도와 원초적 언어들을 배우고 싶다. 익숙하지 않아 주저된다면 한 발 내 디딤으로 시작하면 된다. 모든 것들의 시작은 생소하기 때문에 거침없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뿐이다.
 
여행은 눈에 익숙하지 않은 곳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경험이 여행자들에겐 자양분이 되어 앞으로의 삶의 활력소가 되고 길을 만들어가는데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눈에 익지 않은 나무, 다른 모양과 색깔의 지붕과 기와, 접해보지 못한 꽃, 하늘과 바다, 산 그리고 구불구불한 길, 산등성이 비탈에 잘 다듬은 밭 이랑, 생소한 길 이름, 도시 이름들, 경사진 비탈길, 산등성이로 내려오는 구름, 안개. 질끈 동여맨 소녀의 머리, 작은 동네로 들어갈 때의 어색함.


 
여행은 꼭 멀리 간다고 여행은 아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면 어디에서나 여행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숨을 고르며 살면 될 것을 거칠게 호흡하면 삶은 늘 힘들어진다. 작은 어려움에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참아 내는 것이다. 말을, 감정을, 움직이는 행동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 한 밤에 그리움을, 고요를, 쓸쓸함을 짙은 푸르샨 블루의 하늘로 온 몸을 덮어 내는 것이다.  
 
요세미티의 침엽수들이 뜻밖의 불길에 그랬다. 껍질을 다 태우고 속살을 들어 내어도 견디어내야 했다.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살아남아 한 겨울 맨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참아야 했다. 온몸의 세포가 뒤섞여 더러는 죽고 더러는 살아남아 봄을 기다렸다. 죽은 듯한 나무 꼭대기 푸른 잎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푸르게 자라는 생명의 고귀함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산 등성이 쌓인 눈이 무게를 견디어 내며 한 겨울 산을 덮어 감싸고 이제 햇살에 조금씩 녹아 내리는 물줄기가 시내를 이루고 강물을 이루었다. 자기 몸을 내주어 제 새끼를 살리는 가시 고기와 같이 둥둥 떠 가는 제 몸보다 살아나는 새끼들의 흔들리는 꼬리를 기뻐했다. 세상 모든 어미처럼 자식 입안 한 숟갈의 밥이 더 고마워 끼니를 굶어도 배불렀던 어미 사랑처럼 나무도 귀하게 새 잎을 내었다. 이 미련 없이 아련한 봄날에도.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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