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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팜므파탈의 파피꽃

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주황빛 나비들이 춤사위를 펼친다. 파란 하늘 밑 반짝이는 해와 살폿한 봄바람이 어울리자 파피꽃들은 화사한 나비 떼가 되어 파르르 몸을 흔든다. 무채색의 겨울을 지나 연둣빛으로 채색되는 신록들 사이로 나비 떼들은 하늘하늘 날갯짓에 바쁘다. 설레는 주황빛 파피꽃 물결은 밀물과 썰물 같은 바람에, 몸을 기울이며 벅차오르는봄기운에 바르르 온몸을 흔든다.
 
어찌 보면 파피꽃들의 움직임은 수많은 새가 어울려 연출하는 화사하고도 눈부신 군무 같다. 갈색 땅 위에 부드러운 바람과 포근한 햇볕이 만드는 향긋한 봄의 향연은 바야흐로 니르바나를 이루며 계절의 열기를 더해간다.
 
어렸을 때다. 몸이 약한 나는 여름이면 항상 배탈과 설사로 앓아눕곤했다.어머니는 말려 놓은 양귀비 줄기와 열매로 정성스레 약을 다려 먹이셨다. 어머니의 쓰디쓴 약을 몇 번 먹고 나면, 씻은 듯 나아졌던 배앓이. 그때의 양귀비는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제며 절묘한 치료제였다. 어머니는 식구의 어느 병도 그렇게 양귀비를 다려 먹였다. 그것은 누구라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였고, 변치 않는 사랑이었으며, 통증을 다독여주는 따뜻한 약손 같은 것이었다.
 
주황빛 파피꽃은 아이슬란드의 양귀비꽃이다. 주황빛이 빨간색과 노란빛의 합성이라면, 파피꽃에는 빨간빛이 품은 정열적인 열정과 노란색의 이중성 의미가 내포된 것 같다. 그러기에 팜므파탈의 양귀비꽃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유혹하여 헤어나기 어려운 마약이라는 파멸의 덫으로 끌어가고 있나 보다. 하지만 그것이 덫인 줄 알면서도 마력적인 유혹에 못 이겨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삶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일까 양귀비의 꽃말은 ‘덧없는 사랑’이다.
 


 자세히 들어보면 파피꽃 무리에는 순한 민초들의 소리가 들어 있다. 봄을 찬양하는 노래 속에는 힘든 삶을 지어가는 민초들의 한숨 소리가 섞여 있다.  
 
세찬 바람에 꺾일 듯 연약한 양귀비의 꽃잎처럼, 독한 삶 속에 마냥 부대끼며 흔들려야만 하는 여린 삶들. 약한 민초들의 소리는 합쳐져야만 크고 굵어지기에 그렇게 무리를 이루는 것일까. 민초들의 떼창은 어쩌면 순리를 따르는 정의의 함성으로, 봄을 맞아 더 극대화되는 것 같다.
 
오늘은 안개 낀 날이다. 파피꽃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묵묵히 침묵하고 있다. 자기가 피어나 자신의 소리를 낼 때와, 침묵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양귀비꽃.
 
따뜻한 봄날 주황빛 파피꽃들에게 짙은 연민을 느끼며, 그것들을 향한 팜므파탈의사랑에 한없이 빠져든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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