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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잡초도 해내는데

양주희 수필가

양주희 수필가

추위가 가시기도 전에 햇볕이 따스하다 느껴지면 울타리 밑에서부터 잡초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넓은 잔디밭과 나무울타리로 되어있는 우리 집은 잡초의 전시장이다. 물이나 비료를 따로 주는 것도 아닌데 이른 봄부터 거친 땅을 비집고 알아서 깊숙이 뿌리 내리는 잡초를 보면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잡초는 땅속 깊숙한 곳에서 영양분을 표토층으로 길어 올리고 흙이 유실되거나 마르지 않게 덮어주는 멀칭의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퇴비를 만들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농사의 적인 줄만 알았던 잡초가 농작물의 생육 기반이 되는 토질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 모든 것을 그냥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 존재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자신만의 특기로 증명한다. 잡초마저도 이렇듯 한순간의 어긋남 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낸다. 가만히 살펴보면 잡초도 위계질서가 있다. 추위에 떨면서도 이른 봄 땅을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고 시들어버리는 유채화 같은 꽃이 있는가 하면 그 뒤를 이어 쑥과 같이 땅 밑으로 뻗어놓은 줄기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아 세상 밖으로 나오고 토끼풀처럼 넓은 줄기를 잔디 위에 뻗으면서 영토를 넓히는 잡초도 있다. 일찍 나왔다가 희생양처럼 시들어 다른 잡초들이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양보하고 거름으로 쓰인다.
 
달리는 기차에 무작정 올라탄 것처럼 목적지를 정하기도 전에 인생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결국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끝없는 욕망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결코 채워지는 법이 없는 욕망의 굴레 자체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남보다 좀 더 부유할 것인지 아닌지의 차이만 있는 뻔한 인생을 이리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게 가끔은 허무하고 기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한 번쯤은 의심이 들 만도 하다. 잡초에 있는 특기가 하물며 인간은 없으랴. 잡초에도 있는 존재 이유가 인간에게만 없으랴. 인간의 가치나 존재 이유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를 고민한다고 하면 사회 부적응자 취급이나 받을지도 모른다.
 
가게 일을 마치려고 하는데 새내기 젊은 백인 남성이 들어왔다.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자기 할머니 같다며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보스와 심하게 언쟁을 벌였다고 했다. 너무 억울한데 말할 사람도 없고 참고 왔는데 나를 보고 가게에 들어왔다. 성실하고 잘생겼고 다른 주에서 왔는데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 가게 손님이다. 농담도 하고 어떻게 회사에 적응하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가끔 말을 섞었다. 순진하고 때 묻지 않아서 가게에 들어오면 반갑게 인사한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생겨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에 안 들고 너하고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지라도 절대로 보스하고 언쟁은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처음 직장이고 패기도 있고 자기주장도있겠지만사회생활인 걸 어쩌랴. 참고 참아서 견뎌내야 한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을 해주었는데도 눈물을 감추고 이제는 속이 편해졌다며 웃는다.  
 


인간관계는 미묘하다. 누가 잘하고 잘못한 게 없어도 사이가 벌어지고 잘 지내다가 틀어지곤 한다. 잡초들처럼 밟아도 비가 내리고 나면 또 살아나 기꺼이 다른 풀들이 살아나도록 돕고 산다. 우리 집 잔디밭에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도 잡초라고 뽑아버리면 어디서 또 나타난다. 우리가 겪는 사회생활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면 마음에 상처를 조금 덜 받지 않을까.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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