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낳고 MVP까지 딴 농구전설…평창銀 김보름이 궁금했던 것
스포츠계 저출산, 엄마선수가 없다 ③·〈끝〉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 저출산으로 위기를 맞은 분야는 한두 개가 아니다. 스포츠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특히 선수 지원자를 못 구하는 비인기 종목의 경우 경쟁력은커녕 종목 존폐를 걱정하는 처지다.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위해 결혼한다”는 남자 선수와 달리 여자 선수의 결혼·출산 비율은 일반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중앙일보는 ‘미혼 선수’ 김보름(30·스피드스케이팅)과 ‘엄마 지도자’ 전주원(51·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코치)을 만나 여자 선수의 고충을 들어봤다. 전주원은 임신을 이유로 은퇴했다가 2년 만에 코트에 복귀해 우승하고 MVP까지 수상했다. 현재는 지도자로 활동 중인 입지전적 인물이다.
전 코치는 “2004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딴 뒤 테스트를 해봤더니 임신이었다. 당시 33세로 미련 없이 은퇴했고, 딸을 낳은 뒤 코치를 맡았다. 선수로 복귀할 마음은 없었는데 소속팀의 설득 끝에 코트에 돌아왔고, 결국 마흔 살에 은퇴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2018년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 은메달리스트 김보름은 “전 코치님 이야기를 들으니 신기할 뿐이다. 스피드스케이팅은 체력이 중요한 종목이라 20대 중반이면 거의 그만 둔다. 그래서 내가 최고참이다. 그런데 출산하면 체력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물었다. 전 코치는 “산후조리를 FM(야전교범)대로 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100일간 양말도 안 벗고 스트레칭을 하니 열흘 만에 15㎏이 빠졌다. 근육량이 떨어졌지만, 노하우가 있다 보니 몸이 빨리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신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보름이 “언젠가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고, 나이가 들어도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슬플 것 같다. 지도자로 나설 생각도 있지만, 결혼 뒤에도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도자로서 10차례 우승을 차지한 전 코치는 “딸이 어릴 때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가이드북에 나온 사진을 보고 울었다. ‘집에서 애나 봐’란 소릴 들을까 봐 두려웠다. 코트에서 더욱 열심히 한 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름 선수도 두려워하지 말고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결혼과 출산과 이후에도 열심히 활동한다면 후배들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가 스포츠계 저출산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선수는 “암묵적으로 ‘계약 기간에 임신은 금지’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팀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전했다. 격렬한 종목의 한 기혼 선수는 “잦은 장기 합숙 탓에 아이가 안 생겨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직장 운동경기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90일의 출산휴가와 최대 1년 6개월의 육아 휴직을 유급으로 보장한다. 다만 지도자와 해당팀의 양해가 불가피하다. 강원도청 소속 김보름은 “만약 나도 임신한다면 팀에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를 원하는 선수를 배려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여자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전 코치는 “만약 선수가 출산 후 복귀 의지가 있다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프로 스포츠는 결국 회사(모기업, 구단)의 사정이 중요한 게 현실이다. 육아 휴직을 보장하기도 쉽지 않다. 운동선수만을 위한 특혜가 있다면 일반인들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여성체육인 125명 중 절반 이상은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선 ‘임신 기간에 훈련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다면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268명의 응답자 중 62%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국민인권위원회와 권익위원회의 권고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힌국스포츠과학원과 출산 이후 운동법, 복귀 과정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박수현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여성 선수 중 78%가 육아 문제가 해결된다면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효경.박린(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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