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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칼럼] 인간의 합리성과 행동경제학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시작한다.  
 
갑에게 1000달러를 주고 이 중 일부분을 원하는 대로 을에게 나누어주되 만일 을이 받기를 거부할 경우 갑과 을은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을이 합리적이라면 얼마를 받더라도 한 푼도 받지 않는 것보다는 좋을 것이므로 수취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갑의 입장에서는 을이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거부할 이유가 없음을 알고 있고 자신은 많이 가질수록 이익이므로 가급적 최소금액만 을에게 지급하고 자신이 나머지 금액을 가지며 을도 그 금액을 받고 만족하는 것이 모두에게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실험결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랐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300달러에서 500달러를 을에게 지급하였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을이 300달러 수준을 제안받고도 수취를 거부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개인 소비자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효용이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고, 기업의 경영자는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고 경제학에서는 가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주체의 효용 및 이윤 극대화 노력은 가격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 수요-공급의 과부족이 없는 균형상태에 이르게 되며 모든 사람들이 만족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요지이다. 그러나 위의 실험결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때때로 비합리적이다. 감정에 좌우되고, 편향적이며, 일관적이지 않고, 근시안적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경제학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것이다. 이러한 의문에서 태동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구체적으로는 심리학의 연구성과를 경제현상에 접목한 학문을 말한다. 이 분야에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가 다수 배출되면서 경제학의 변방에서 주류로 편입되었는데,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만 교수가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이다. 그의 저서인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slow and fast)'에는 인간의 비합리적 측면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연구결과들이 나온다.  
 
행동경제학이 발견한 또 한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확률은 낮지만 극단적인 사건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지나친 설탕 섭취에 따른 위험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확률이 현저히 낮은 비행기 추락사고나 악어·상어 등의 공격은 심각하게 걱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행동경제학은 정책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준다. 수많은 정책들이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여 추진되지만 모든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중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한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살충제 살포로 인한 호흡기 또는 피부 질환의 위험을 일만분의 15에서 십만분의 15로 줄이는 것보다 일만분의 5에서 '0'으로 감소시키는 것에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을 나타내었다. 수치상으로 보면 실제로 전자가 후자보다 위험의 수준을 훨씬 감소시키지만, 사람들은 위험을 완전히 없애는데 더 큰 비용을 지불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확실성효과”라고 부르는데, 이는 공공자원 할당 시 우선순위를 왜곡함으로써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합리적인 경우에도 그 합리성에 따라 나타날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매우 복잡다기하며 사전적으로 행동의 결과를 추론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최근 ChatGPT 등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세간의 큰 관심을 받으면서 머지않은 미래에는 인간이 자칫 인공지능에 지배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많아지는 듯하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주장하듯 만약 우리가 AI처럼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존재라면 역설적으로 인간은 인공지능의 기계적 합리성이 대체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구자천 / 뉴욕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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