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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토란

아기 손처럼 앙증맞게 생긴 쑥갓의 파르스름한 잎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말 쑥갓같이 생겼다. 다시마는 또 어떠한가. 다시마라고 부를 때 혀끝에서 부드럽게 말리는 발음, 쑥갓과는 다른 깊디깊은 암갈색. 그 기품 있는 암갈색이 다시마라는 이름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한 맛으로 다가와 대번에 쓰린 속을 달래준다. 석양이 이우는 저녁나절에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 냄비 앞에 서서 미나리를 손으로 뜯어 넣고 있노라면 냄비 속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 보인다. 물론 그건 다시마다.
 
이현수 『토란』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여러 야채와 생선들이 어우러져 제맛을 내고 있는데, 다시마만 퉁퉁 불은 몰골로 국물 속에 어중간하게 떠 있다. 내가 가진 바다의 맛을 모두 주었으니 제발 건져달라고 통사정하는 얼굴이다. 기꺼이 씹히지 못하고 국물맛을 내는 데만 사용되다 버려지는 다시마는 그래서 그 이름이나 맛에 비릿한 슬픔의 기운이 감돈다.”
 
새해 아침에 읽은 첫 소설 ‘토란’의 문장이다. 요리를 매개로 한 심리 묘사가 발군이다. “권태가 덕지덕지 쌓인, 보지 말았어야 할 인생의 비밀을 일찍 엿본 죄로 삶에 대한 정열이나 어떤 희망도 품지 않는 한 여자가 만들어내는 푸석푸석한 마른 날들의 풍경~”(‘마른 날들 사이에’)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은 붉은 물이 뚝뚝 흐를 것 같은 강렬한 순간이 존재할 것이다.”(‘파꽃’) 등 빛나는 문장의 소설 10편이 실렸다. 『토란』(2003) 개정판과 새 소설 『우리가 진심으로 엮일 때』가 함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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