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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170년째 치워지지 않은 사다리

손국락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

손국락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첫 번째로 가보고 싶어 하는 성지중의 성지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사건의 현장으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비아 돌로로사(고통의 길)의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다 언덕은 헤롯대왕이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면서 돌을 뜨던 채석장이었다. 예루살렘 서쪽 성문 앞의 버려진 채석장을 사형장으로 사용했던 이유는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AD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가 예수가 돌아가신 골고다 언덕과 무덤을 찾고자 성지를 순례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아프로디테(비너스) 신전이 세워진 것을 보고,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부탁해 AD 325년에 신전을 허물고 성묘교회를 세웠다.  
 
현존하는 성묘교회는 AD 1149년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세워졌으나, 1291년 아랍의 패권자였던 살라딘이 성지를 장악했다. 그는 성묘교회를 허무는 대신 교회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 중에서 하나를 돌로 완전히 막은 후 열쇠를 이슬람교 측에 맡겼다. 이때부터 오늘까지 성묘교회는 한 개의 문만 사용하고, 그 문의 열쇠는 지금도 이슬람교 측이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성묘교회 내부는 그리스 정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이집트 곱틱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여섯 교파가 각각 한 부분씩 분할하여 소유권을 주장하며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1853년 각 교파가 교회 내의 거룩한 장소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평화는 깨어지고 말았다. 성묘교회 내에서 일정한 예배 공간을 차지한 각 교파의 사제들은 자신들의 구역에 다른 교파의 사제가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 예로, 이집트 곱틱교회의 성직자가 성묘교회 옥상의 자기 구역에서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피해 의자를 에티오피아 정교회 구역으로 20센티미터 정도 옮겼다는 이유로 성직자들이 싸워 11명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묘교회의 막힌 입구 위에는 170년째 치워지지 않은 작은 사다리가 창문 아래에 놓여 있다. 사다리가 놓인 곳이 어느 교파의 구역인지 그리고 누가 사다리를 그곳에 놓았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그 사다리를 치울 수가 없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삶 속에서는 십자가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한다.  
 
기독교인의 삶이 갖는 독특한 특징은 십자가다. 이 십자가는 세상을 넘어서게 하고, 세상을 이기게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화해의 길이며, 평화의 길이며, 사랑의 길이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는 진정한 생명 나무다. 죄의 용서,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의 확립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부활절은 하나님이 성묘교회의 작은 사다리 하나를 치우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해 부활하신 축제의 절기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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