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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빈방에 누워

이정아 수필가

이정아 수필가

지난번 큰비로 방 하나가 못쓰게 되었다. 마루판이 튕겨 올라와서 신발을 신고 들어가 책을 꺼내와야 했다. 공부방으로 쓰던 곳이었다. 급하지 않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신경질을 부렸더니만 그제야 고치기 시작했다. 돈이 안 나오는 공사라며 자기 집은 잘 안 고친다.
 
다른 공사하다가 남은 자재가 있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더니 마루판이 아니라 대리석(marble) 판이다. 잠자는 방이 아니니 차가운 돌판 이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고쳐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아는 이 중에 페인트 업을 하는 분이 있는데, 놀러 가 보니 자기 집의 건물 외관을 한 가지 색이 아닌 흰색과 크림색을 섞어 칠하였고 방도 각방이 색이 다르다. 유행인가 하였더니 남의 집 칠해주고 페인트가 남으면 칠하다 보니 그리되었다고 해서 웃었는데, 우리 집이 그 짝 난 것이다. 아무튼 물건을 다 들어내고 돌판을 깔고 나니 방이 훤해졌다.
 
아무것도 없는 빈방 가운데 대자로 누워보았다. 가구가 없으니 작은 소리를 내어도 소리가 반사되어 울린다. 등을 돌판에 대고 휑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방정맞게도 고분의 석실에 홀로 누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처럼 사방이 조용한 땅속에 누워있으면 참 심심하고 지루하겠다는 생뚱맞은 생각.
 
그래서 죽은 이와 함께 부장품들을 넣어 보내는 것인가 엉터리 추측도 해보았다. 진시황릉 용마갱엔 순장된 사람과 동물이 부지기수라는데 아마도 외로운 길이라는 걸 알았던 때문이 아닐까?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소주를 넣어드릴까 하다가 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이니 심심하지 않게 성경책을 넣어드렸다고 동생이 말했다.
 
“둘 다 넣지.” “둘 다 넣으면 위법이야.”
 
사촌 동생들이 말도 안 되는 ‘위법’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봉분을 뒤로한 채 실없는 웃음 웃었었다. 시신을 볼 수 있게 하는 이곳의 장례식에도 가보면 가슴 언저리에나, 두 손을 포갠 부분에 성경책이 꼭 놓여있는 걸 본다.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사실 성경은 무용지물일 텐데 말이다.
 
죽을 때 자신의 의지로 무얼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들이 챙겨 넣어주기 전에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그러니 무얼 움켜쥐려고 아등바등할 이유가 없는데, 우리가 사는 것은 결국 무얼 소유하려는 투쟁의 연속이 아닌가?
 
바닥 공사 덕에 잡동사니 다 버리고 한결 가벼워졌다. 이젠 빈방으로 돌아가는 일을 연습해야 할 때가 아닐까? 이 빈방을 아무 가구도 안 들여놓고 그저 생각하는 방으로 삼고 싶다. 그러다 보면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고분이니 석실이니 석곽이니 부장품이니 이 단어가 익숙한 걸 보면 나는 전생에 공주나 왕비였나? 빈방의 돌바닥에 누워 해 본 잠시의 즐거운 착각이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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