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그발 강 가에서
*그발 강 가에서말 한마디 돌려 받지 못한 저녁 / 그믐달도 한 사나흘 배를 홀쪽히 굶는다 / 별마저 가물거려 걸음마저 흔들리고 만다 / 문밖에 세워둔 숨겨진 모습으론 볼 수 없어 / 당신의 눈을 빌어 투명해지고 싶다 / 유리바다 같고, 수정 같은 길이기에 // 땅에서, 하늘에서 번갈아 열리는 문 / 내게서 먼 곳이기도, 내 안에 있는 곳이기도 하는 // 봄볕에 익은 한 동이 물로 온 몸을 씻는다 / 깨끗하게 만나는 첫 걸음을 위해 한 생애를 건너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 견딜 수 없는 것들이 티끌만큼 가벼워져 / 바람에 흩어지는 안간힘을 먼 발치에서 바라 보았다 / 당신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향한 / 그발 강 가에서 본 순백의 날갯짓으로 *에스겔 10:20
부활절 음악 예배를 위해 젊은 찬양팀과 나이든 성가대원이 함께 해 찬양 연습을 하였다. 음악의 질보다 세대간의 화합이 목적이었기에 큰 부담 없이 조인하게 되었다. 총 다섯 곡이지만 독창 한 곡, 남성 중창 한 곡, 여성 중창 한 곡을 빼면 두 곡을 합창 하는 것이었다. 합창곡을 연습하는 중에 마음에 깊숙이 다가 오는 가사가 있었다. ‘부활의 호흡이 시작됐네’라는 가사였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이제 부활의 삼 일, 그 호흡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의 가사였다. 숨이 멎은 몸에, 물과 피를 다 쏟은 그 몸에,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아 어두운 굴속에 안치된 시체에 호흡이 시작되는 순간을 상상해 볼 수 있는가? 피가 다시 돌고 죽었던 세포가 다시 깨어나는, 그야말로 부활로 가는 첫 걸음의 시간을 우리는 두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것인가?
연습 후 함께 나눈 기도를 통해 마음속 깊이 울림이 있었다. 내 안에도 살아나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알지 못하는 사이 나는 많이 죽어있었다. 숨쉬어야 할 곳에 숨쉬지 못하고 호흡을 멈춰야 할 곳에 오히려 정신을 팔았으니 살았다 하나 죽은 것이었고 생각은 나의 뜻과 달리 저급한 곳에 놓여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빛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지 못했고 삶의 지향을 거스리는 곳에 눈길을 주었다. 마음을 담아 드리는 기도를 하지 못한 시간이 오래 지나갔다.
집으로 오는 길. 당신의 손길을 보았다. 넓은 면적에 청보라의 꽃들이 이불을 깔아놓은듯 펼쳐져 있었다. 지나쳐 온 길을 되돌아가 그 속에 물들고 싶었다. 부활의 호흡은 이런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그저 발걸음이 그 앞에 멈춰지는, 일 순간 물들어 오는 환희! 부활의 호흡은 얼어붙었던 대지 위에서도, 죽은 듯했던 나뭇가지 사이에도, 봄바람의 춤사위 속에서도, 새들의 날갯짓에서도, 합창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호흡 속에서도,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도 힘찬 심장의 박동이 뛰고 있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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