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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으로 천하를 얻은 광무제

 부드러움으로 천하를 얻은 광무제
 
김건흡
MDC 회원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말이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속으로 강건함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부드러움과 강건함은 양자가 음양처럼 잘 조화되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게 세상 사는 처세의 기본이리라.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겉으로 강경한 사람이 많고 더 주목을 받기도 한다. 특히나 대부분의 통치자들은 지나치게 강건하고 탐욕스럽고 거칠며 눈앞의 성공과 이익에만 급급한 면이 있다. 하지만 부드럽고 약한 것은 쉽게 부러지지 않고 모서리에 부딪쳐도 깨지지 않으니 실은 약한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유연함의 표현이다. 이런 유연한 도리를 바탕으로 천하를 얻은 인물이 있다. 바로 후한의 개국황제 광무제 유수(劉秀)다.  
 
그는 일개 평민에서 일어나 역사에 빛나는 명군으로 성장했다. 왕망의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한 왕조를 다시 부활시켰다. 왕망 정권의 제도 개혁 실패와 잇따른 실정으로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그는 한 왕조 부흥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봉기했다. 서기 23년 유수는 경시제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허베이성 곤양 전투에서 왕망군을 대파했다. 서기 24년 유수는 마침내 한단을 함락하고 도망치는 왕랑을 추격하여 목을 베었다. 그 후 유수는 한단에서 왕랑과 지방 호족들 사이에 오고간 수천 통의 비밀문서를 압수했으나 그는 이 문서를 제장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버렸다.  
 
“왕랑과 내통한 자들은 이것으로써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유수가 녹록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경시제는 명망이 높아가던 유수의 형 유연을 시기해 죽였다. 유수는 형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꿈 참고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시제에게 사죄하는 여유를 보였다. 그리고 형의 장례식도 거행하지 않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척과 친구와의 교제도 끊었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큰일을 도모하려면 참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장안으로 들어간 적미군은 경시제를 죽였다. 유수는 적미군을 토벌하고 수도를 낙양으로 옮겨 후한 왕조를 창건했다. 그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광무제는 민간에서 성장해 진실과 거짓을 알았다. 농사의 어려움과 백성들의 괴로움을 알았다. 그러므로 천하가 평정되자 안정에 힘썼다. 왕망의 번거롭고 촘촘한 법을 없애고 한의 가벼운 법을 회복했다. 몸소 거친 명주를 입고, 색은 여러 가지를 쓰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경제와 사회가 안정되어갔다. 어진 임금 밑에 어진 신하가 있듯이 광무제 치하의 중신 가운데는 어진 사람들이 많아 정치는 더욱 평화로웠다. 적미군을 평정한 후 남은 것은 농(깐수성)의 외효와 촉(쓰촨성)의 공손술을 평정하는 일이었다. 건무 8년(31) 광무제는 농을 공략하고 있는 잠팽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농을 평정하면 다시 촉 땅을 바라볼 것이다. 한 번 군사를 출진시킬 때마다 내 머리의 흰털이 자꾸 늘어만 간다.”
 
광무제는 이 편지에서 원정군을 보낼 때마다 자신의 흰머리가 늘어난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말은 원정군의 노고를 생각하면 자신도 괴롭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욕망이란 한이 없는 것이어서 농을 평정하면 다시 촉을 바랄 것이라 하여 자신도 일개 인간으로서의 번뇌가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득롱망촉(得隴望蜀)’이란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유수는 근엄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 창업 군주에게 흔히 발견되는 파격과 거친 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매사를 신중하게 중론을 물어가며 온건하게 처리했다. 그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통치술을 체득한 사람이었다. ‘저는 부드러운 도리로 천하를 얻었을 뿐 아니라, 또한 부드러운 도리로 천하를 다스리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후대 학자들은 이를 유도치국(柔道治國)이라고 불렀다. 전국을 평정한 광무제는 모든 면에서 무리하지 않고 우선 민생회복에 주력했다. 광무제의 이런 정치 자세는 시기에 매우 적합했다. 당시 격심한 전란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의 극에 달해 있었다. 광무제 자신의 성격도 억지로 밀고 나가지 않는 유연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그런 시대의 국정 담당자로서는 확실히 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너그러움이다. 형 유연을 죽인 주유조차 용서했다. 그는 황제에 오른 후 주유가 주둔한 낙양을 포위하고 투항을 권유했다. 주유는 '내가 그의 형을 죽였는데 어찌 투항하겠는가'라며 거부했다. 그러나 유수는 '대업을 일으키는 자는 자그마한 은원을 따지지 않는 법'이라며 주유를 용서했다. 그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을 늘 군신들에게 강조했다. 매사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공무를 처리하고 행동거지도 마치 살얼음 위를 걷거나 깊은 연못 앞에 선 것처럼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무제가 끔찍이 아끼는 신하 가운데는 송홍을 비롯하여 신중하고 근후한 인물들이 많았다. 광무제의 누이 가운데 호양 공주라는 미망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은근히 송홍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송홍의 위풍당당한 용모와 덕에 넘치는 기품은 감히 다른 사람들이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녀는 항시 이렇게 말하며 송홍을 은근히 흠모하고 있었다. 광무제는 이 같은 누이의 심정을 알아차리고 송홍에게 넌지시 이야기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어느 날 송홍이 입궐하여 광무제를 알현하자 광무제는 호양 공주를 병풍 뒤에 숨겨 놓고 넌지시 송홍의 뜻을 떠보았다.  
 
“사람이 부자가 되면 친구를 바꾸려 하고, 귀하게 되면 아내를 바꾸려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인정이란 과연 이런 것일까.”
 
송홍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소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가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며, 구차하고 천할 때 고생을 같이하던 아내는 절대로 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송홍의 굽힐 줄 모르는 태도에 감동한 광무제는 살짝 공주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단념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빈천지교(貧賤之交)는 불가망(不可忘)이요,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유수는 소년 시절 “벼슬을 한다면 집금오, 장가를 든다면 음여화”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집금오란 황제의 신변경호와 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책임자로 보는 사람들이 위압감을 느끼도록 항시 위엄있고 화려한 옷차림을 갖추었으며, 순찰 시에는 많은 기마부대를 거느리고 위풍 당당히 행진했다. 젊은 시절의 유수는 그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음여화는 당시 남양군 신야현의 호족 음씨의 딸로 절세 미녀였다. 젊은 시절의 유수는 화려한 관직에 오르고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기를 꿈꾸는 일반 청년과 다를 바 없었다. 후에 광무제 유수는 그의 소원대로 절세의 미녀 음여화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고, 집금오의 자리를 훨씬 뛰어넘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늘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지방 특산물과 진귀한 음식을 조정에 바치는 관행을 폐지했다. 27년 특별 조서를 내려 "각 군국이 보내온 산해진미는 절대로 받지 말 것이며, 감히 금령을 어기는 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매사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공무를 처리하고 행동거지도 마치 살얼음 위를 걷거나 깊은 연못 앞에 선 것처럼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무제는 중원 2년 63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는 뼈와 살을 깎는 비상한 노력으로 천하를 평정하고 천하를 다스렸다.  
 
지난해에 작고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겸손 온유 통합으로 영연방의 지속성을 보여주었다. 국가의 영속성이란 죽은 자의 희생 위에 산 자의 헌신이 보태져야 가능한 것이다. 죽은 위인을 산 자들이 부활시키지 않는 한 국가의 영속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드러운 연성(軟性) 리더십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강한 리더십이 박력이 있고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외형적이고 일시적인 변화일 수밖에 없다. 비루한 산 자들이 날뛰고, 서로 물고 뜯는 모습에 신물이 난 참에, 먼 땅에서 거행된 오랜 왕실의 장례식은 이런 역사의 지혜를 전해주었다. '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하고 굳센 것을 누른다. 어떤 상황에 대처할 때 강한 힘으로 억누르는 것이  이기는 것 같지만 부드러움으로 대응하 는 것에 당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음을 당하게 되면 굳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도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굳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가 강하게 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해지면 꺾이게 된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자리하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자리를 잡는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 물의 역할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는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알건만 그 이치를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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