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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칼럼] ‘BANK RUN’ 은행위기의 서막

아내가 휴대폰을 보더니 멀쩡한 아이 장난감들이 반값 세일한다고 빨리 사야 한다고 야단이다. 뉴욕·뉴저지 맘카페에 핫딜이 떴다고 흥분한 모양새다. 그런데 할인코드로 ‘BANK RUN’을 입력해야 한단다.
 
갑자기 전날(3월 10일) 영업 중단된 실리콘 밸리 은행이 떠올랐다. 바로 기사를 검색해보니 유명 장난감 유통업체 Camp가 모든 현금을 실리콘 밸리 은행에 예치해 놨는데 이를 몽땅 잃게 되면서 현금 확보를 위해 폭탄세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서부 한 은행의 붕괴소식이 다음 날 아침 바로 체감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규제 당국의 신속한 조치로 현재 실리콘 밸리 은행에 예치된 현금은 모두 보장받게 되었지만 이 은행위기가 언제 또다시 닥칠지 모를 일이다.  
 
이번 은행위기는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후 급변해 왔던 경제상황,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통화정책 기조 전환, 기술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이다. 시작은 2020년 초 발발한 팬데믹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팬데믹을 가장 심하게 겪은 나라이고 미국 통화정책도 어떠한 나라보다도 빠르게 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중은행에 미 연준발 유동성이 투입되었고 시중은행 예금잔액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시중은행들은 넘쳐나는 예금을 대출로 민간에 공급하는 게 순리였겠으나 문제는 펜데믹 공포와 격리정책 등으로 대출수요가 급감했던 것이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예금을 그냥 놀리기보다는 국채, 모기지 증권 등 비교적 안전한 채권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강한 인플레이션이 찾아오면서 통화정책은 2022년부터 긴축기조로 전환된다. 금리인상은 은행들이 늘려온 채권의 가치를 급격하게 하락시켰다.  
 
금리인상의 여파는 예금자의 행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장기간 제로에 가까웠던 예금금리에 예금자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다가 높아진 금리를 점차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에 예금자들은 금리를 더 많이 주는 은행이나 MMF 등으로 자금을 이동시키게 된다. 또한 경기둔화 영향으로 기업들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예치하는 예금 규모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은행은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치가 하락한 채권을 굳이 팔 필요가 없다. 인플레이션이 나중에 완화되면 금리도 내려가면서 자연히 채권가치가 회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월 8일 실리콘 밸리 은행이 예금자들의 인출요구에 부응할 현금 확보를 위해 손해를 무릅쓰고 보유채권을 팔면서 18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 소식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지게 되고 불안해진 예금자들은 서둘러 휴대폰에서 클릭 몇 번으로 예금인출을 시도하게 된다. 결국 9일 하루에만 실리콘 밸리 은행 예금의 1/4에 해당하는 420억 달러가 인출되었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미국 15위 규모의 은행은 단 이틀만인 10일 문을 닫게 되었다.
 
현재 규제 당국의 신속한 조치로 은행위기의 여파는 누그러진 느낌이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다. 은행들의 심리가 위축되면서 대출 축소 현상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특히 최근 부진한 상업용부동산이나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이 크게 줄어들면서 경제를 둔화시킬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은행위기 발 경기둔화 압력이 인플레이션을 완화시켜 통화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빠르게 종료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최근 금리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을 보면 시장은 후자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2008년 리먼사태와 같은 충격적인 이벤트 하나로 전 세계가 침체에 빠질 수도 있는 만큼 미국 은행시스템의 리스크를 철저히 점검하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미 규제 당국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할 때이다.

노진영 / 뉴욕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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