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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호산나!

목회칼럼 / 윤우식 더비전교회 공동담임목사

 지난 주일은 ‘종려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호산나’ 외치던 것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종려주일 이후 한 주간을 ‘고난 주간’이라고 해서 지킵니다. 하지만 ‘고난주간’을 지킨다고 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각자가 십자가를 만들고 지고 다니고, 좀 더 열성적인 사람은 거기에 자기 손을 대고 못을 박은 등의 행동을 한다면,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진정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고난주간에 묵상해야 하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부활로 인한 구원의 은혜, 기쁨입니다. 그래서 고난 주간이라고 이름을 했지만 그 기간 동안 마음을 무겁게 하며, 어두운 마음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다가올 ‘부활주일’에 대한 은혜와 기쁨의 감격을 고대하며 묵상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수 많은 사람들이 열광을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마태복음 21장10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것은 죽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에 대해서 사람들은 열광을 합니다. 그리고 ‘호산나, 호산나’라고 외칩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장9절. 사람들은 길에 자신들의 겉옷을 깝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겉옷은 밤에는 덮고 자는 이불이 되기도 하고,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는 저당물이 되기도 하는 일반 사람에게는 귀한 옷입니다. 그것을 길 바닥에 깐다는 것은 존경과 헌신의 의미입니다. 또한 종려나무가지를 흔듭니다. 당시의 ‘종려나무’는 ‘승리, 기쁨’의 상징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개선장군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지금 예수님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산나, 호산나’라고 외칩니다. ‘호산나’는 ‘지금 구하소서, 부디 도와 주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신적인 능력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남자만 5000명인 무리들을 다 먹이고도 남을 정도의 기적을 베푸는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들의 왕이 된다면 수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적이 일상이 되는 나라에서 백성으로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유대인들의 가장 큰 염원인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겁니다. 이들이 외치는 ‘호산나, 호산나’는 이 지상에서의 승리를 줄 왕으로 생각하며 외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예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한복음 6장26절 여기에 ‘표적’은 바로 구약에 예언이 된, ‘메시야, 그리스도’로 예수님이 구원자로 죽으실 것이며,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것에 대한 표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이 ‘먹고 배부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찾고, 따랐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호산나, 호산나’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대다수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 찬양하는 이유는 바로 ‘표적’ 때문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그 확실한 표적, 증거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호산나, 호산나’ 라고 외침 속에는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깨닫고 외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종려주일’이라고 한다면 나는 왜 겉옷을 그 앞에 깔며, 왜 종려나무를 흔들며, 왜 ‘호산나, 호산나’ 외치는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부자가 되고, 건강하게 되고, 만사형통하게 되는 것 때문에 열광하는 믿음이 아니라 진정한 구원자 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믿는 그런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묵상으로 이 고난주간 한 주간을 보내며, 부활의 은혜를 기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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