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마야문명
지난주 동생을 만나러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방문했다. 유카탄 반도는 마야문명의 터전으로 유명하다.마야문명은 17세기 말 스페인 침략자들에 의해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인류 문명의 6대 근원 중 하나로 찬란한 성취를 자랑한다. 인류의 보편적 식재료, 옥수수·감자·호박·고추 등이 모두 이 문명으로부터 왔다. 또 정교하고 독창적인 문자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예술·건축·수학·역법·천문학 등에서 고도의 수준을 과시했다.
요번 여행에서 내가 발견한 신비로운 광경은 세노테라는 유카탄에만 있는 독특한 지형이었다. 이것은 지하수로만 이뤄진 거대한 동굴호수인데, 석회암층이 녹아내려 지하수가 노출된 것이다.
왜 이런 동굴호수가 생겨났을까. 이 질문은 공룡의 멸절과 관계가 있다. 공룡이 갑자기 멸절한 이유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지만, 6600만 년 전 거대운석이 지구를 때려 그 낙진이 약 10년 동안 지구를 덮어 태양 빛을 가리면서 지구 상 3분의 2의 생명이 멸절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거대운석이 떨어진 장소가 바로 유카탄이고, 거대운석의 크레이터 주변으로 세노테가 발견된다. 현재 6000개 넘게 남아있는 세노테는 그 깊이가 수백 미터에 이르는데, 그 깊이가 주는 신성한 푸르름은 거룩하기 그지없다.
마야문명은 이곳에서 발생했다.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아포칼립스(종말)의 터전에서 피어난 문명이다.
우리는 종교나 정치권력, 문화권력 등이 만들어내는 수 없는 아포칼립스의 협박 속에서 살고 있다. 종말론적 사유는 인간을 미혹시키는 매우 매력적인 미끼다. 지면의 제약으로 상술할 순 없지만 마야의 설화들은 인간 세상의 모순적 사태에 대해서도 매우 긍정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여·야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한국의 정치문화가 종말론적 사유를 벗어나 운석의 충돌에도 살아남는 지구 생명의 지혜를 배우기를, 세노테의 청량한 바람 속에서 빈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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