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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무기가 득세하는 세상

이기희 Q7파인아트 대표,작가

이기희 Q7파인아트 대표,작가

농사 중에 제일 힘든 게 자식 농사다. 밭농사는 한 해 잘못돼도 다음 해를 기대할 수 있다, 자식 농사는 한번 기울어지면 갈아엎기 힘들다. 유명인사나 재벌, 필부에 이르기까지 자식 농사는 장담하기 힘들다. 권력 줄 잡고 잘 나가던 인물이 자식 문제로 낙마하고, 부귀영화 누리던 사람이 자식 일로 곤경에 빠진다.  
 
유전자를 탓하면 무엇하리. 자식 잘못보다는 부모의 습관적인 위선과 비리, 거짓말과 권모술수가 공동의 이념으로 전파돼 무덤을 파는 경우가 많다. 빈부 격차와 계층 간 갈등이 심화한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 착각과 환상은 자유다. 애초에 용이 될 자질과 성품이 전혀 안 되는 사람들이 비리와 위장, 현란한 말재주로 포장해 유명인사가 된다 한들 종국에는 하늘의 뜻을 가릴 수 없다. 결국 용은커녕 이무기도 못 되는 판정을 받아 나락의 길로 들어서는 사례를 보면 찝찔하다. 부모는 자식의 롤 모델, ‘닮지 말라’ 애원해도 닮는다.
 
신화 속 등장하는 이무기는 토지신인 뱀과 용의 중간격인 상상의 동물이다. 천 년을 물속에서 수행하여 여의주를 얻으면 용이 될 수 있다.  
 
한국 신화 원천강본풀이에는 여의주를 셋 가진 이무기가 나온다. 용이 되려면 여의주 한 개만 고르고 나머지 둘은 포기해야 하는데 욕심 때문에 여의주를 못 버려 용이 못 된다. 신화 속 주인공 오늘이가 여의주 둘을 버려야 용이 된다고 알려주자 이무기는 오늘이에게 여의주를 주고 마침내 용이 된다는 이야기다.
 


욕심이 화를 자초한다. 여의주는 용의 턱 아래 있는 영묘한 구슬인데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여의주는 단 한 개만 있으면 된다.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용’이다.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자식의 앞날을 그린다. 어리석은 부모는 이무기도 못 될 자식을 용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용을 쓴다. 용이 될 자에게 필요한 건 만능의 여의주가 아니라 부모의 올바른 가르침을 담은, 인생을 관통할 진실로 빛나는 여의주다.
 
용과 이무기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이무기가 용보다 스펙이 떨어진다. 용이 구름, 바람, 비와 우박, 천둥번개를 관장할 강력한 힘을 가지는데 이무기는 구름을 불러올 수 있는 힘 밖이 없다. 이무기는 퇴치당하는 불쌍한 종족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무기가 1000년을 수행한 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낼 때 그 사람이 “용이다”라고 하면 용이 되지만 “뱀이다”라고 하면 이무기가 되어 다시 1000년을 더 수련해야 한다. 용이 되기 위해선 사람들 눈에 진정한 용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무기가 용포를 못 입는 것처럼 덜 떨어진 천박한 언어와 사실 왜곡으로 민심을 호도하는 자는 개천에서 더 참담한 수행을 감내하는 길밖에 없다. 용이 되기 전에 사람이 되는 것이 정답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원리를 반복한다. 용으로 키우기보다 ‘사람의 자식’으로 키우는 게 맞다. 갖가지 여의주를 갖기 위한 투쟁으로 이무기의 생을 반복하지 말고 단 한 개 빛나는 진실의 여의주를 입술에 담으면 된다. 천둥번개 비바람을 불러오는 힘을 갖지 못해도 사랑의 눈물로 대지를 적실 수 있다면 하늘 높이 승천하는 날개를 달지 않을까.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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