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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들꽃과 우리의 삶

최청원 내과 의사

최청원 내과 의사

비가 온 후 기다기던 봄이 찾아왔다. 황토만 있던 벌판에는 들꽃들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파피라고 부르는 작은 꽃들의 잔치다. 작은 꽃들이 황토 바닥만 보이던 벌판을 뒤덮어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었다. 빨갛고 노란 원색의 물감으로 채색된 듯한 꽃들은 눈이 부실 정도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심장의 맥박조차 빨라지는 것 같다.  
 
누군가 들꽃이 너무 아름다워 한 움큼 파다가 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매일 정성 들여 거름과 물을 주며 가꾸었건만 곧 죽어 버렸단다. 들꽃은 마당에 있는 장미나 백합과는 다르다. 들꽃의 생명력은 거친 바람과 황토, 뜨거운 햇볕에서 더 강해진다. 태양을 향해 곧게 얼굴을 들고 자란다. 장미나 백합처럼 사람의 보호도 그늘도 필요하지 않다.  
 
들꽃들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어우러짐으로 장관을 연출한다. 겨우내 땅속 어둠 속에서 봄을 기다리며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되면 텅 빈 공간을 눈이 부시도록 채워준다. 비록 짧은 기간의 향연이지만 예쁜 화단이나 화병도 필요 없다.  
 
봄의 들꽃들은 2~3주가 지나면  짧은 색깔의 잔치를 마친다. 그리고 차가운 밤하늘에 고개 숙이고 내년 봄을 기약하며 다시 땅속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들꽃들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어우러짐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이런 들꽃들을 보면서 우리의 삶도 다른 사람들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면 얼마나 충만함을 느끼게  될까 생각해 본다.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사랑하라는 ‘운명애’를 말했다. 봄에 들꽃들이 피고지는 모습을 보면 마치 니체가 주장한 ‘운명애’를 실천하는 듯하다.  
 
모든 풍요의 원천은 우리의 거창한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풍요를 내부로 가져와 느끼고, 알아채며 주위의 작은 것, 가벼운 것, 그리고 미미한 것들이  함께 만드는 충만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들꽃들이 함께 모여 황토만 있던 공간을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채워버릴 수 있는 충만함, 또 모든 것을 체념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을 때 기꺼히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참을성을 배우기 위해 들판으로 나가야겠다. 들꽃의 웅장한 아름다움 앞에서 조용히 눈도 감아 볼 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들꽃들이 만든 원색의 잔치 속에 들어가 봐야겠다.  

최청원 /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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