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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지극함이여, 불변함이여

뒤뜰 감나무 가지에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있어 머지않아 가지마다 녹색 잎들로 무성해지리라. 쑥들도 흙 속에서 제법 제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다. 무화과나무도 기지개를 켜고 이제 새 눈을 틔울 모양이다.  
 
우리 집의 동물 가족으로는 닥스훈트 계통의 개 한 마리가 있다. 어릴 때 집을 나서면 그저 달리기만 하던 패기도 사라지고 이제 행동도 느긋하다. 가족 누가 안 들어오면 소파에 앉아서 문 쪽만 바라보는가 하면, 우체부가 가까이 오면 문 가까이 기를 쓰고 달려가 야성적으로 짓는 자세는 한결같다. 우리와 더불어 산 지 십이 년을 보내면서 이제는 ‘애별이고’라는 말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이별의 괴로움은 어찌 사람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우리와 얼마나 함께 지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하루가 소중하게만 여겨진다.  
 
작년 가을까지 우리 집 감나무 근처에는 토끼가 살고 있었는데 아침에 나가면 깡충깡충 달려왔다. 낮게 두른 철망에 매달려 빤히 바라보고 있어서 쓰다듬어 주면 한동안 다소곳이 있었다.  그런데 사료만 먹이다가 토끼가 감나무 잎을 잘 먹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나뭇가지에 무성하게 달린 잎들을 오랫동안 보아왔지만 감나무 잎을 먹은 기간은 불과 한 해 반 정도 된다. 그런데 작년 가을 아침에 나가보니 토끼는 한쪽 눈이 약간 찌그러진 채 오래 바라보고 있어서 기운이 좀 없어보여도 눈병이 내일이면 좀 나아지겠거니 무심했었다.  
 
그러나 토끼는 이별을 예고하고 있었을까? 토끼는 막지막 인사를 보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토끼는 옆으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토끼는 개나 고양이처럼 화장이 법으로 허락되지 않아서 그냥 감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토끼가 우리 집에 온 사연은  8년 전 남편이 공원에서 흰 토끼를 발견하고 전화를 하면서 오늘 밤 이대로 두면 코요테한테 잡혀먹힐 것이라기에 데려와 키우기로 했다. 토끼가  뒤뜰에서 있는 둥 없는 둥 하얀 몸체로 뛰어다니고 있는 동안 좀 더 자주 들여다보고 감나무 잎사귀도 일찍부터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애완동물들은 주인들을 웃게도 하지만 끝내는 울게도 한다. 몸집이 작은 짐승들은 주인 무릎에 주둥이를 얹고 가만히 있는가 하면  꼬리를 격하게 흔들 때도 있고 천천히 흔들 때도 있어서 호의를 강렬하게 또는 가볍게 드러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말로 인한 언어의 부작용으로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짐승들은 침묵으로 응하고 오로지 몸짓이나 눈빛으로 지극하고도 지순한 감정을 전할 뿐이다. 이러한 애완동물들과의 소통으로 사람들은 삶의 피곤을 잊기도 하고 평온을 되찾기도 한다.  
 
그리고 작은 새들도 가끔 찾아오는 소박한 뒤뜰에는 봄의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다. 작은 풀들과 나무들은 제 고유의 모습과 빛깔들로 나날이 새롭고 산뜻하게 단장하고 있다. 유동의 속성을 가진 불안정한 인간만사에서 봄은 자연의 순리로 한결같음의 이치를 보여주고, 눈 앞에 펼쳐지는 불변의 진리를 통해 안정감과 신뢰를 느끼며 가슴 저변은 연녹색으로 물드는 것 같다.  

권정순 / 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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