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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말이 통해서 살고 있소?

이 남자 너무 웃긴다. 청개구리 놀음이 재미있어서인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보슬비가 솔솔 뿌리는 날씨에 내가 입고 가라고 한 버버리코트는 그대로 던져두고 오늘도 남편은 얇은 양복만 입고 나갔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중요한 자리에 갈 때는 넥타이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이게 좋아? 이게 좋아? 묻는다. 내가 오른쪽 것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하면 거울 앞에서 목에 번갈아 대어보고는 왼쪽 것을 매고 나온다. 때로는 운동 간다고 나서다가 묻는다. 반바지 입을까? 긴바지 입을까? 날씨가 더우니 반바지 입으라고 하면 바지 몇 개를 들고 갸웃거리다가 긴바지를 입고 나선다.  
 
여름이 왔나 싶게 햇살이 뜨거운 어느 날, 여자 네 그룹이 와글거리며 골프를 쳤다. 라운딩이 끝나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를 몰고 식당으로 가는 중이었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데 앞차의 조수석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회원이 벌게진 얼굴로 다가왔다. 차가 갑자기 꼼짝을 안 한단다. 잠시만 비상등 등을 켜고 뒤에 서 있어 달라는 부탁이다. 트래픽이 심한 퇴근길에 도로 한복판에서 정지해 버렸으니 위험하기 그지없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앞차를 엄호(?)했다. 차 주인은 이것도 만져보고 저것도 눌러보고 몸부림을 치지만 모든 프로그램이 꺼져버린 차는 트렁크 문조차도 열리지 않았다.  
 
허둥대는 우리 앞에 파란 티셔츠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백인 남자가 다가왔다. 차 주인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하며 위험하니 저쪽 인도에 가 있으라고 한다. 익숙한 솜씨로 범퍼를 열고 이것저것 만지던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백인 남자가 길가에 차를 세웠다.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주거니 받거니 의논을 하더니 한 사람은 뒤에서 밀고 한 사람은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잡았다. 일단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생각인 듯했다. 그런데 웬걸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파란 티셔츠 남자가 와서 나를 보고 그냥 가라고 했다. 경찰과 토잉카를 불렀으니 잘 해결이 될 거라고. 내가 차를 움직이자 그는 고장 난 차에 등을 대고 서서 마주 오는 차에게 차선을 바꾸라며 교통순경인 양 양팔을 번갈아 휘저었다. 두 남자의 등 쪽 티셔츠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몸에 착 달라붙었다.  
 
내가 식당에 도착한 지 한 참 뒤에야 온 차 주인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미국에서 50년 가까이 살았지만 백인 남자하고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으로 해 봤다.” 갑자기 식당 안이 와아 하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마음속에서 백인 사위를 본 친구가 살짝 부러워지려고 하는데 저쪽 귀퉁이에서 누가 한마디 한다. 암만 좋아도 말이 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또 와글와글 웃는다. 그 말도 맞긴 하다. 자상하면 뭐해. 함께 살아가려면 말이 통해야지. 그래도 한국 남자가 편하다는 분위기로 바뀌려는 찰나, 커다란 목소리가 한쪽 구석에서 삐쭉 올라온다. “그래, 한국 남자하고는 말이 통해서 살아요?”

성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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