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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일곱마리 말이 끄는 마차

이기희

이기희

세상에는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무겁고 힘 겨워도 어깨에 지워진 짐을 내려 놓지 못한다. 멍에를 맨 소처럼 지겹고 힘겨워도 묵묵히 앞만 보고 걷는다. 해 지기 전, 더 늦기 전에 넓디 넓은 밭고랑을 소처럼 묵묵히 갈아야 한다. 
 
유년의 기억 속 덩치가 우람한 소는 슬픈 눈망울을 가졌다. 삼만이 아재가 날샌 솜씨로 멍에를 씌울 때도 큰 눈을 한두 번 꺼벅거릴 뿐 요동하지 않는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해 말이나 소의 목덜미에 얹는 굽은 나무 막대기다. 소의 몸 형태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만드는데 나무 양옆에 구멍을 뚫고 소의 멍에와 쟁기를 이어주는 보줄을 맨 다음, 가슴걸이판을 소의 목쪽 아래로 잡아당기면 멍에가 안정되어 소를 잘 끌 수 있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도 비유적으로 ‘멍에’라고 한다.
 


오래 전 화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사람이 걸면 직원들이 무조건 바꿔준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칼럼 독자라며 전업 화가가 되고자 조언을 얻고 인생상담을 하고 싶어 오하이오주까지 오겠다고 한다. 내 앞길도 구만린데 상담이라니, 목소리가 떨리고 절실해서 거절하기 힘들었다.  
 
화랑과 아트센터 운영하며 아이 셋 간수하고 남편 섬기고(?) 시어머니와 어머니 두분 모시고 번갯불에 콩 튀듯 사는 형편이라 낯선 손님 맞을 상황이 아니었다. 화랑 경영하며 제일 민망할 때가 신예 화가(Budding Artist)들이 보내는 작품과 프로필을 외면하는 일이다. 그래도 나 좋다고, 존경(?)한다며 먼 길 오겠다는 여자분을 호텔에 혼자 재울 수도 없는 처지라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우리집에 숙식하며 화랑에 함께 출퇴근했다.  
 
그 분은 ‘화가의 길이냐, 가정을 지키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듯 했다.  세세하게 안 물어봤지만, 결혼 생활을 지키려면 ‘화가의 꿈’을 접어야 한다고 했다. 가정과 남편, 자식을 포기하고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라고 말했다. 나도 모른다.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있기나 한 건지. 마침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 오래된 마차 한 대가 서있는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이 그림은 마차를 끌고 갈 말이 필요하군요. 몇 마리 말이 필요한지는 마부가 잘 알겠지요”라고 했다. 출발 게이트 쪽으로 가던 그녀가 돌아와 날 꼭 껴안았다. “두 마리 말 고삐 잡아 볼게요.” 눈에 이슬 같은 눈물이 반짝였다.  
 
홍상화 장편소설 ‘사람의 멍에’는 생의 멍에를 벗고 자유를 찾아 나선 한 예술가의 이야기다. 출판사 서평에서 ‘삶의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한 인간의 아름다운 비상’이라 소개한다. 생의 멍에를 벗고 비상하는 그림은 없다.  
 
나는 일곱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달린다. 가정도 자녀도 부모도 사업도 포기할 수 없는 내가 쥔 말 고삐다. 마르크 샤갈이 못 되도 화가 되길 꿈꾸고, 참회록 적듯 글을 쓴다. 청상의 어머니가 내 손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들 손을 꼭 다잡는다. 멍에를 목에 걸고 있었기에 위험한 탈출을 꿈꾸지 않았는지 모른다.  
 
‘수리아’는 인도의 베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으로 일곱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하늘을 달린다. 밤이면 어둠을 거두고 하계(下界)를 내려다 보며 지상을 둘러본다.  
 
삶이라는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인생의 치열한 도면을 그린다. 그림이든 글이든, 형체 없는 바람이라 해도, 끝나지 않는 길을 향해 일곱번째 말이 달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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