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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유원

“아침에 일어나면 뭐할래?”
 
“점심까지 늦잠.”
 
“좋아.”
 
나는 한때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미워했던 아이의 어깨에 기대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편안했다.   백온유 『유원』
 


영화 ‘우리집’ ‘벌새’ 등 최근 우리 문화계의 특징 중 하나는 소녀의 서사다. 예전 같으면 마냥 해맑거나 아니면 롤리타 콤플렉스의 대상쯤으로 퉁쳐지던 소녀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목소리를 가진 존재로 주체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2019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유원’은 여기에 생존자의 서사를 더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소녀 유원이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치유되는 얘기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언니에 대한 기억이 내 어딘가에서 발굴되는 것인지, 혹은 발명되는 것인지를.” “세계 전체에서 희박한 것들을 굳이 내게서 찾으려는 시도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말하는 소녀를 구원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받은 소녀다.
 
백온유 작가는 이름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필력을 보여준다. 마침내 상처를 떨쳐내는 소녀는 “아침에 일어나서 뭐할래”라는 친구의 질문에 “점심까지 늦잠”이라고 답한다. 이제야 비로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는 얘기다. 소녀는 학교 옥상에서 치킨을 먹으며 친구와 진실게임을 하다가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진다.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어 치킨 뼈를 담은 봉지가 날아갔다. 날개 뼈와 목 뼈가 날아가는 것이 웃겨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닭이 날아가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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