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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아름답고 슬픈 만남을 위하여

이기희

이기희

아들이 집에 온다. 집 근처로 출장 오게 돼 잠시 들린단다.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벌렁거린다. 달력에 동그라미 치며 기다렸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아들은 애들이 어리고 직항 비행기가 없어 한동안 다니러 오지 못했다. 대신 딸네 가족이 사는 뉴저지에서 온 가족이 뭉치거나 우리가 샌디에이고로 가서 상봉을 했다.  
 
새 집 지어 이사온 뒤 첫 방문이라서 잘 보이려고(?) 부지런을 떤다. 닦은 바닥 또 닦고 귀한 손님 맞듯 깔끔을 떤다. 나이 들면 사는 게 허접해지기 쉽다. ‘노티나는 모습’ 보고 아들이 아파할까 봐 단도리를 한다. 나이가 들어도, 죽어서라도 아이들 가슴 속에 봄이면 피어나는 목숨줄 끈질긴 찔레꽃 향기로 남고 싶다.  
 
회의 끝난 뒤 저녁에 들린다는데 ‘뭘 해주나’ ‘무슨 말을 하나’ 며칠 동안 혼자 싱글거리며 별의별 궁리를 한다. ‘저녁은 뭘로?’ 물었더니 어릴 적 좋아하던 식당에서 케리아웃 해서 먹는다나. 반 평생 가까이 살아도 미국은 타향, 동성로 따로국밥을 내가 그리워하듯 아들은 어릴 적 입에 밴 그리운 고향맛을 찿는다.
 
지금 출발한다는 문자 받고 황새처럼 목 길게 빼고 길목을 지켜본다. 기다림은 행복한 고통이다. 짜릿한 환희 속에 헤어질 시간의 아픔이 가슴을 짓누른다. 사는 날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설렘과 아픔, 그리움의 언덕을 헤매야 하나.  
 


늦둥이로 태어나 개구쟁이로 철없던 막내가 우람한 체구로 와락 껴안는다. 내 품속을 파고들며 옹알이 하던 아들 품에 안긴다. 왠지 슬픔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둥지 떠난 파랑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름답고 슬픈 만남과 이별이 있을 뿐이다.
 
나는 울보다. 좋아도 울고 슬퍼도 울고 기뻐도 눈물 흘린다. 떠나간 계절이 안스러워 눈물 찔끔거리고 잊지 않고 돌아오는 계절이 고마워 운다.  
 
내 유년은 물안개 속에 아롱거린다. 내가 두 살 때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울보인 딸을 강인하기 키우려고 정성을 다했다. 당신 등에 지워진 생의 업보를 감당하는 것이 딸의 앞날을 무탈하고 행복하게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타작마당에 팔 다리 묶인 볏짚들은 마른 얼굴로 겨울을 맞는다. ‘훠어이 훠어이’ 타작이 끝난 마당에 삼만이 아재가 참새떼나 까치를 쫒는 시늉을 할 동안 가마솥 뚜껑에 배추전 무우전 부치는 옥이언니의 양볼은 복숭아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멍석에 떨어진 쌀은 그대로 두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추수할 곡식이 없는 가난한 아낙들은 앞치마에 낱알을 주어 담았다. 어머니는 ‘뿌린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를 믿었다.  
 
우리집 크고 둥근 밥상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배고픈 사람, 끼니가 없는 사람은 누구던 밥상에 낄 수 있었다. 저녁거리가 없는 사람은 굴뚝에 연기 나는 집 앞에 서성이면 끼니를 해결 할 수 있는 시절이였다.  
 
만남은 짧고 이별의 기다림은 길다. 번개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재물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목숨 조차도 잠시 육신에 묶어둔 꽃잎이 아니던가.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내 몸에서 싹이 돋아 세상을 덮고도 남을 기쁨을 주는 내 아들아,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이 환희고 슬픔이라 해도, 대대손손 꿋꿋이 자라 뿌리 내릴 그 땅에서 행복해라. 잘 살아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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