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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My Way

왜 이리 실감이 나지 않는가. 도둑맞은 시간이라 해야 할까. 87세 노모가 딸을 보러 홀로 미국에 오셨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신 7주의 꿈같았던 시간이…. 망설이다, 기다리다, 아침에 활짝 피다 저녁에 사라진 나팔꽃같이, 어떤 애타던 짧은 만남과 서글픈 이별은 허무한 꿈처럼 이토록 비현실적인가보다.  
 
귀국하신 엄마에게 아침, 전화를 거니 강원도에는 하얀 눈이 밤새 무릎까지 쌓였다며 아직도 너의 집, 너의 부엌, 그곳 거실에 있는 것 같다며 엄마도 훌쩍 지나간 시간이 꿈만 같다고 한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님의 침묵이 사무치게 가슴에 와 닿는 겨울비 내리는 창가에 앉자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그날을 떠올려본다. 엄마가 이곳 뉴저지 내 집에 계시던….
 
그날, 그러니까 12월 햇빛이 좋던 어느 오후, 엄마는 뒷마당에 나가 겨울 풍경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엄마의 기분을 돋워주고 싶어 음악을 틀어주겠다고 하니 엄마는 ‘마이웨이’를 틀어달라고 주문을 하셨다. 나는 소형 스테레오를 데크로 들고나와 프랭크 시내트라의 불후의 명곡 마이웨이를 틀어주고 엄마 등에 큰 이불을 덮어 주고 방해될까 조용히 뒷걸음쳐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삭막한 겨울 공기를 가르며 And now, the end is near(이제, 거의 다 왔네)/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그래, 내 앞에 있네. 그 마지막 커튼이). 음악은 흐르고. 겨울나무 아래 앉자 자신의 세월을 회상하며 상념에 젖은 엄마, 누구의 뒷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올 때 그때는 사랑이 깊은 거라고 누가 그랬던가. 멀리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은 한 폭의 슬픈 그림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살아온 날의 독백 같은 노래의 가사는 지난 세월의 기억들을 불러와 스냅사진이 되어 조각조각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래,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의 생을 자기방식대로 자기의 조건에서 최선으로 끌고 나가려 안간힘 쓰는 나약하고도 강인한 아름다운 개별자가 아닌가. 넘어지고 실망하고 후회하고 다시 일어나 제 길을 걸어가는 모두의 삶, 그 길 위의 여정은 슬프도록 눈부시다.  
 
그날, 마이웨이 노래에 젖어 들어 한 생을 휘둘러보고 돌아앉자 말없이 저녁상을 마주하던 그 저녁의 보랏빛 노을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 내일도 태양은 뜰 것이고 엄마는 강원도 횡성 섬강의 둑길을 걸으며 북촌리 성당 언덕을 오르며 친구들과 문우들과 만나 다시 웃고 다독이시며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당신의 길을 걸어나갈 것이다. 나 간혹, 뒤를 바라볼 때는 그 뒷모습이 아픔이 아닌, 슬픔이 아닌, 화해한 사랑이고 희망과 손잡은 추억이길 바란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일어선다.  
 
엄마의 아파트 가로등 불빛 아래 흩어지는 하얀 눈을 멀리서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며 나도 다시, 나의 길을 걸으려 아침, 대문을 연다.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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