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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어느 국회의원 후보의 가계도

본인 자신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오는 4월 23일 열리는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야마구치(山口) 2구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 기시 노부치요(岸信千世) 이야기다. 올해 31세인 그의 경력이라고는 게이오대를 나와 후지TV에서 6년간 사회부 기자로 일한 게 전부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 이유’를 늘어놓아야 하는 상황. 그래서 가장 큰 강점을 적기로 한다. 바로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이유, 즉 ‘가문’이다.
 
그럴 만도 하다. 기시는 일본 최고의 ‘정치 명문가’로 불리는 집안의 종손이니까. 그가 선거용 홈페이지에 올린 ‘가계도(家系圖)’는 화려한 이름들로 채워졌다. 증조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출신으로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요, 증종조부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다. 할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외상을 지냈고, 지난해 7월 총격 사건으로 숨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삼촌이다. 아버지는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이지만 외가에 양자로 보내진 기시 노부오(岸信夫) 전 방위상. 삼촌이 갑자기 사망하고 아버지도 건강 때문에 의원직에서 사퇴하면서 그는 아버지의 선거구를 물려받게 됐다.
 
그가 정치인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는 선거 홈페이지에서 알 수 없다. ‘정책’ 항목에는 ‘꿈이 넘치는 마을 만들기’라는 해맑은 공약이 적혀 있을 뿐이다. “내세울 게 집안밖에 없는 거냐” “지금이 봉건시대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13일 홈페이지를 아예 닫아버렸다. 선거만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 “가문도 실력이야. 억울하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정치도 가업’이라는 인식이 일본엔 있다. 현직 의원의 3분의 1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현 총리를 포함해 지난 30년 간 총리를 지낸 사람 중 70%가 세습 정치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일본에서 유독 세습정치가 용인되는 이유에 대해 ‘3반’을 요구하는 선거문화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3반’은 지반(地盤·지역조직), 가반(한국어로 ‘가방’, 자금력), 간반(看板·지명도)인데 이로 인해 세습 정치인에게 유리한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돈과 조직, 지명도가 필요한 건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닐 터. 더 큰 원인은 정치를 ‘나의 일’로 여기지 않는 무관심이다. 세습정치가 당연시되면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이는 더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3류’로 평가되는 일본 정치의 변화는 이 악순환을 끊는 데서 시작돼야 할지 모른다.

이영희 /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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