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핵인싸
카톡! 글이 왔다. 어, 이런 거 전혀 안 보내시던 분이 보내셨다. 열어보니, 건강하고 장수하는 사람들의 뜻밖의 공통점에 대한 글이다. 뜻밖? 식습관, 운동, 이런 거 아닌 뜻밖의 요인이 있다고? 아마도 어울려 사는 삶 이런 거 아닐까 하며 읽어보니, 역시, 친구였다. 친구가 없을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마음고생이 심하고 노화가 빨라져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많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고 더 건강한 삶을 누렸다는 것이다.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오저치고(오늘 저녁 치킨 고?), 일취월장(일요일에 취하면 월요일에 장난 아님),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등등 요즘 한국 신조어는 정말 기발하다. 그 중 좀 오래된 인싸, 아싸라는 말이 있다. 인싸는 인싸이더, 아싸는 아웃싸이더의 줄임말이다. 여러 사람과 잘 어울려 사는 사람이 인싸인데, 그 중 핵인싸는 핵폭탄급 인싸이더라는 뜻이다.
커뮤니티 제조가인 나의 취미는 사람들 연결하기다. 30여년 가르쳤던 한인 제자들 동창 모임이 그렇게 해서 지난달 만들어졌다. 그들 말대로 ‘판을 키우는 스타일’인 나는 이제 슬슬 한인 아닌 ESL 제자들과의 모임도 계획하고 있다. 또 지금은 여러 교회로 흩어졌지만, 남편이 개척해서 시무했던 교회를 함께 다녔던 분들의 모임도 생각 중이다. 이들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아직도 기억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이다. 교회 동창회라니! 들어본 적도 없긴 하다. 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일을 도모하며 서로 도우며 사는 게 왜 나쁘겠는가.
이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인싸의 삶을 살아간다.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교인이든, 학생이든, 내담자든, 관계를 최대한 이어가니 말이다. 요즘 다니는 교회의 소그룹 모임인 ‘아둘람’ 커뮤니티도 그렇다. 아둘람은 성경에서 다윗이 사울의 핍박을 피해 숨어지냈던 동굴 이름인데, ‘억울한 자, 환난을 겪은 자, 빚진 자’ 등이 와서 함께 지냈던 곳이다. 이처럼 우리 아둘람에도 여러 힘든 인생들이 모여, 이 커뮤니티에서의 사랑으로 동굴 밖 세상 살아갈 힘을 얻고 있다.
지난 삼 년 동안 만나게 된 30여명 영어 북클럽 회원들도, 이제 내게 중요한 커뮤니티이다. 매주 함께 책을 읽고 삶을 나누며 성숙을 향해가다 보니, 서로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지난번‘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출간되었을 때, 자기 일들처럼 기뻐하면서 축하하고 도와주는 이들을 보며, 우리가 또 하나의 가족 같은 공동체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 출간 이후 생기고 있는 독자들과의 교류는 또 하나의 만남의 써클이다.
여느 토요일이나 다름없이 오피스 나가는 날이었지만, 지난 토요일은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곧 생일을 맞는 오랜 내담인 한 분의 작은 생일파티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어 매년 생일을 홀로 보내는 그녀를 위해, 라이드 해주신 분과 동료 상담사까지 네 명이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드렸다. 내 책과 스카프를 선물로 받아들고, 고맙단 말도, 기쁜 표정도 짓지 못하는 그녀가 떠나며 수줍게 묻는다. 내 생일이 언제냐고. 나 생파 해줄 거냐고 하니 소녀같이 웃는 그녀에게도 인생의 길벗들이 많이 생겨나서, 그녀가 행복한 인싸, 아니 핵인싸의 삶을 살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 오후였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