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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이 장면]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졸업을 앞둔 여고생 소희(김시은)이 취업을 하면서 시작된다. ‘사무직’이며 ‘대기업’이라고 좋아했지만, 소희의 첫 직업은 콜센터 상담원. 통신사 해지를 원하는 고객을 설득해 결합상품을 파는 일을 한다. 항상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며 밝은 톤으로 응대해야 하지만, 온갖 폭언과 욕설에 시달려야 하는 지독한 감정 노동이다. 소희를 더욱 옥죄는 것은 실적이다. 사무실 벽을 차지하는 화이트 보드에 매달 매겨지는 순위와 그에 따른 성과급은, 사회에 첫발을 디딘 19살 청년 노동자의 가치이며, 소희는 숫자를 통해 자신의 ‘값’을 증명해야 한다.
 
‘다음 소희’는 숫자에 가려진 인간에 대한 영화다. 수많은 ‘숫자의 미장센’ 안에서 인간은 마치 소품처럼 존재한다. 그 이데올로기는 ‘실적’이다. 콜센터에선 각자 해낸 성과로, 학교는 취업한 학생수로 평가를 받으며, 그것은 경쟁의 근거가 된다. 다른 학교보다 더 많은 학생을 취업시켜야 지원금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정글 같은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엑셀 시트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이다.
 
‘다음 소희’는 수많은 숫자를 통해 그런 현실을 차갑게 전달하며, 숫자의 살상력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낸 이미지가 바로 ‘숫자 앞의 소희’다. 어쩌면 자기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생소한 숫자들로 규정되면서 ‘숫자 세계의 부품’이 된 소희. 가혹한 세상이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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