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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개똥 주인을 찾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를 흥얼거리며 동네 산책을 했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는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아니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배꽃에 취했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입은 연분홍 치마가 한몫했는지 이 노래가 절로 나왔다.
 
길을 걸으면 다양한 종류의 사람과 마주친다.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엄마, 여유 있게 걸으며 운동하는 할머니, 다정하게 걷는 부부,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사람들, 그리고 가장 많이 만나는 게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다.  
 
하루 종일 집에서 오직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주인과 개의 운동이 한꺼번에 해결되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집 앞에 ‘개의 배설물은 반드시 수거해 가세요(Please clean up after your pet)’ 이라고 쓴 팻말을 종종 본다. 개가 아무 곳에서나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때문이리라. 요즘엔 반려동물 배변 미수거 시 과태료가 있고 경범죄 처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를 데리고 걷는 사람 중에는 아직도 자기 개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사람이 예상외로 많다.  
 
어느 교수가 말한 데로 자기 개의 똥은 자신이 치우는 최소한의 펫티켓은 지켜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오는데 우리 집 드라이브 웨이 위에 개의 그림이 그려진 파란 비닐봉지가 보였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뜯어보지 않아도 금세 알았다.  
 
세상에. 아니 뭐 이런 사람이 있어. 한국 사람이 산다고 일부러 이랬나 하는 피해망상적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개똥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해서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동네 네이버 후드 웹사이트에 7초짜리 영상이 떴다. ‘이 여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어느 집에 설치한 링 카메라에 찍힌 동영상은 중년의 어느 여자가 작은 푸들을 끌고 산책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길을 걷던 푸들이 볼일을 보자 여자는 주머니 안에서 꺼낸 비닐봉지에 손을 넣어 변을 그 안에 넣었다. 우리 집 앞에 놓여있던 것과 똑같은 파란 비닐봉지였다. 그리고 봉지를 드라이브 웨이에 던져두고 유유히 길을 떠나는 모습이 잡혔다. 7초짜리 영상은 내가 그동안 알고 싶어 했던 사연을 고스란히 담았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난 이 여자와 대화를 주고받은 적도 있다. 상냥하며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사람처럼 보였는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역시 옛말이 틀린 것이 없다.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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