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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홀로 떨어진 섬 60624

박춘호

박춘호

‘시라크’(Chiraq)라는 말은 시카고 주민들에게는 일종의 낙인이다. 말 그대로 시카고와 이라크를 합친 말인 ‘시라크’는 전쟁터였던 이라크서 전투 중 죽을 확률보다 시카고서 총기사고로 숨질 확률이 더 높다라는 뜻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느 곳보다 얇은, 인간의 목숨이 한낱 부질없음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전쟁터보다 윈디시티의 거리 치안이 더 불안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그 말이 어느 정도 정확하며 신빙성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논문이 최근 나왔다.  

 
의학 관련 논문이 실리는 JAMA Network Open에 실린 이 논문은 전국건강연구소(NIH)의 기금 지원으로 가능했다. 논문의 저자는 브라운대 박사인 브랜든 델 포조인데 전직 뉴욕 경찰 출신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저자에 따르면 시라크는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그것도 꽤 정확한 말이다. 시카고와 뉴욕, LA, 필라델피아 등 4개 대도시에서 총기로 사망하는 젊은층의 숫자가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숫자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는 것이 논문의 결과다. 특히 시카고와 필라델피아의 경우 그 정도가 심각했다. 참고로 휴스턴과 피닉스의 경우 논문에 나온 도시와 함께 대도시로 꼽히지만 이번 연구에 필요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논문에서는 제외됐다.  
 
그 중 시카고의 경우 최대 우범지역으로 꼽히는 60624의 정도는 매우 심각했다. 집코드 60624는 훔볼트파크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데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290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다 보면 나오는 전형적인 흑인 밀집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인구 10만명당 1277명의 20대 청년이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이는 아프카니스탄 전쟁 당시의 395명, 이라크 전쟁 당시의 330명에 비하면 월등하게 높은 숫자다. 시카고와 비슷한 수준인 필라델피아 역시 우범 지역의 같은 기간 살인 사건 빈도는 10만명당 756명으로 집계됐으니 시카고가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인 셈이다. 시카고보다 인구가 많은 LA의 경우는 117명, 뉴욕은 96명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우범지역 외 범죄 발생률이 가장 높은 상위 10%대에 속하는 지역으로 범위를 넓혀도 큰 차이는 없었다. 시카고가 828명, 필라델피아가 454명, LA가 65명, 뉴욕이 78명이었다. 쉽게 얘기해서 시카고에서 가장 치안이 취약한 지역이나 일반적으로 우범지역으로 꼽히는 지역에서 살인사건으로 숨질 확률은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전사할 확률보다 높다라는 것이다.  
 
논문은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다. 논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건강연구소의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수긍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치안 대책은 정신 건강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장에서 삶과 죽음을 가장 적나라하게 목격한 참전 용사들은 퇴역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곤 한다. 이로 인해 알콜 중독에 빠지거나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 관계가 틀어지며 이혼을 하고 홈리스로 전락하고 마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마약이나 약물 중독에 빠져 고통 받는 참전 용사들의 스토리는 영화에서도 자주 다뤄지곤 하는 소재다.  
 
참전 용사들이 PTSD로 고통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보다 더한 지역에서 자란 시카고의 젊은이들이 비슷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라는 추측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결국 이들을 위해서는 정신 상담과 재활을 통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이번 논문의 결과였다.  
 
사실 이런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시카고 남부 지역의 주민들과 시민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것이 정신 건강을 다루는 클리닉의 설립이었다. 이전 시장이 예산문제로 일순간에 문을 닫았던 정신 클리닉이 시카고의 만성적인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실한 대책이었던 것이다.
 
오는 28일 실시되는 시카고 시장 선거를 위해 모두 9명의 후보들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유권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점은 치안 대책이다. 어느 후보는 경찰이 범죄자들을 토끼 쫓듯이 몰아서 추적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후보의 아들 역시 총기 범죄의 희생자로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들어야 하는 주장이긴 하지만 새 논문을 접하고 시카고의 치안 문제를 생각한다면 지극히 단편적인 면만을 강조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시카고의 치안은 한 순간의 노력이나 정책으로 뒤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 뒷면에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이 자리잡고 있으며 지역 재개발과 사회적, 인종적인 배려가 없이는 개선되기 힘든 문제라는 것을 시카고 유권자들은 이미 인식하고 있다.  
 
이번 논문에서도 시카고가 왜 전국적으로도 치안이 불안한가라는 질문에 고질적인 인종별 분리 거주 현상과 폭력의 몰림 현상을 꼽았다. 외딴 섬처럼 불릴 수 있는 60624는 남의 문제가 더 이상 아니다. 하루에도 두 명 이상 총격으로 죽는 시카고의 총격사건이 언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날 지 모를 일이다. 말로만 듣던 ‘시라크’가 우리 앞마당까지 온 상황이다.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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