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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꿈

신호철

신호철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나무는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며칠째 눈보라가 쳐도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지 않는 한 넌 언제고 정지된 나무였다
 
 


나무를 보려고 새벽 커튼을 젖히고  
잔 가지의 눈을 털어주려다 참았다
나무 둥지에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는 아침도 가고
햇살이 스치고 간 한 낮의 짧은 미소도 사라진 저녁
누군가 내 등을 만지는 손길에 뒤돌아 보았다
그것은 창살을 통해 들어온 나무의 긴 그림자였다
한 발자국도, 한 마디 말도 걸어오지 않은 너의 그림자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하루가 지나는 소리였다
 
 
내가 나무가 되어 너의 창가에 서 있으려 했다
깊은 밤 눈길을 걸어 그대에게로 가서 난 그만
잠든 너의 눈시울을 잠깐만 바라보다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를 둥글고 따뜻한 물방울
 
 
내 등 뒤에서 맡을 수 있는 너의 향기는
네 것이고 또 내 것이기도 하기에
 
 
신호철

신호철

나의 서재엔 창문이 2개 있다. 그 창문은 뒤란을 향해 있기에 나는 종종 의자를 끌어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풍경은 계절에 따라 사뭇 다르게 다가 온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 때 즈음 뒤란은 온통 연둣빛 세상으로 바뀌어 생명이 가득 자라는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 오기도 하고, 녹음이 짙은 여름에는 얼음에 탄산수를 따라 한 낮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도 하지만 이내 나른하게 처져있는 무거운 나뭇가지에 스르르 눈이 감기기도 한다.
 
단풍으로 울긋불긋 변하는 나뭇잎들의 겨울맞이는 신비한 지은이의 손길을 마주 대하듯 경이로운 풍경화가 되어오기도 한다. 창 밖 풍경은 계절마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커튼을 젖히고 창가로 의자를 당겨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음악을 듣기도하고, 책을 읽고, 따뜻한 커피 한잔, 무릎을 덮는 담요 한 장을 덮고 글을 쓸 때면 어느 계절보다도 겨울이 참 좋다. 물론 밖에 나갈 수 없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뒤란에 눈이 쌓이고 쭉 쭉 뻗은 솔나무 가지마다 하얀 눈 꽃이 피는 요즈음은 더 더욱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편안함이 몰려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눈 덮인 뒤란엔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토끼 발자국, 청솔모의 길게 끌리는 자국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제법 큰 발자국은 혹시 여우나 사슴의 발자국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사람의 발자국은 없어도 분주한 동물들의 발자국으로 뒤란은 심심하지 않다. 오후가 지나가는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고, 가지를 만지고 가는 바람이 짧은 피리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가까이 느껴질 것 같은 솔나무 향기가 창문 너머로 풍겨 오는 듯하다. 오랜만에 차분해진 마음으로 하루가 지는 오후를 맞이 하고 있다. 늘 해야 할 일로 바쁘게 지났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봄에 출간될 시화집을 준비하면서 편안한 오후를 맞이 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무의 그림자가 길게 창문을 통해 손을 뻗는다. 내 몸을 지나쳐 책상 모서리까지 빛이 만들어낸 나무의 다른 내면이다. 그런 그림자는 실체보다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햇살이 선이 되어 면을 만들고 면이 입체를 만들어 간다. 선으로 입체를 빠르게 만들어 가려고 하면 입체는 이를 거부 하기 때문에 선은 면을 구성하는 먼저가 되어야 하고 그 후에야 면은 입체를 구성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무의 그림자가 내 몸에 그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추리해보다 문득 내가 나무가 되고 싶다. 그래서 창가에 긴 그림자가 되어 나에게로 가서 나를 만나고 싶다.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이제 멀리 창가에 노을이 내리고 이내 수은등 같은 짙은 푸른 빛의 하늘이 펼쳐질 것이다. 곧 이어 여기 저기 반짝이는 별들이 출현 할 것이다. 선물로 받은 하루가 지고, 다시 기적 같은 새벽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오늘이라는 깊이와 넓이, 그리고 그 높이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면 그 선물은 너의 향기가 되고 또 나의 향기가 될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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