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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오주영을 보내며

박춘호

박춘호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취재차였다. 그녀가 일했던 한인교육문화마당집에서 지금은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기자회견 장소는 링컨길에 위치한 마당집이었으니까 지금처럼 마당집이 하나센터로 통합되기 이전이었을 것이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기자회견이 끝났고 시간이 점심 때가 됐던 터라 마당집에서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날은 식당으로 가거나 케이터링 음식이 준비된 것이 아니라 마당집에서 직접 마련한 식사가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의 음식들이 모두 오주영씨의 솜씨였다. 갓 지은 밥에 여러가지 반찬이 나왔는데 모두 오주영씨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음식 솜씨 좋고 인심 후한 맛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식사였다. 식사를 하면서 마당집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날의 주제는 당연히 오주영표 음식이었다. 그 후로도 쭉 오주영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넉넉한 인심에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활발한 성격이었다.  
 
지금까지도 인간 오주영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랬다. 기자로 오주영씨와 대화를 나눠보면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꾸밈없이 말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이슈를 따라가다가 혹은 개인적인 입장이 궁금할 때에는 오주영씨 의견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오주영씨는 막힘없이 시원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꼭 취재가 아니더라도 다른 한인사회 현안이라든지 내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인물에 대한 정보도 오주영씨를 통하면 신뢰감이 생기는 정도가 됐다.
 
그러던 차에 그녀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기회가 생겼다. 평통이라는 단체를 통해서였다. 오주영씨가 평통의 행정실장을 맡았었고 나 역시 같은 기수에서 한 직책을 맡았던 터라 단체 일을 통해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보통 오 실장과 연락이 닿는 경우는 모임 안내를 받는 경우와 행사 준비 때문이었다. 단체 카톡을 통해 모임 안내를 전해주던 사람이 오 실장이었기에 중요한 사항은 그녀를 통해야 했다. 


 
또 한번은 큰 행사를 오 실장과 함께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행사장 관계자들과 인맥이 어찌나 많고 단단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 행사장은 뭐를 잘하고 다른 곳은 뭐가 문제인지를 다 파악하고 있었다. 행사를 위해 오디오 시설을 담당할 업체가 필요했었는데 오 실장의 추천으로 한인 업체와 연결이 됐고 큰 행사가 잘 마무리 되었던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이전과 달랐다면 기자와 취재원으로가 아니라는 점. 같은 단체에 소속되어 함께 힘을 합쳐 일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보다 가까이에서,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점이었다.  
 
하지만 곧 인간 오주영이라는 사람은 내가 이전에 마당집 직원으로, 취재원으로 알았던 그 사람과 별 다른 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제나 그녀는 활발했고 솔직했고 무엇보다 스스럼 없이 먼저 다가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누군가가 단체에서 흠 잡힐 일을 했다면 함께 이러쿵 저러쿵 뒷담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과는 나누기에는 조금 애매한 사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가능했던 것은 모두 오주영씨의 이런 쿨함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녀가 성당에 다니고 있었고 오랫동안 성가대 활동도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언니들과 조카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 속에서 살고 있었던 그녀였다.
 
오주영씨는 팬데믹 직전 결혼을 했고 예쁜 딸도 얻어서 가정도 꾸렸다. 비록 여러가지 제약사항으로 인해 이전과 같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평통 공지를 통해 그녀의 소식은 계속 듣고 있었다. 내 스마트폰에 그녀가 전한 마지막 소식은 카톡으로 정기 모임을 알리던 메시지였다. 그러던 그녀가 황망하게 이를 데 없이 우리 곁을 갑작스레 떠났다. 지난 연말에 간단한 눈 수술을 위해 병원에서 마취를 했었는데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녀의 나이 이제 41세. 그녀의 곁에 있었던 그 어떤 사람도 이렇게 하늘나라로 훌쩍 떠날 줄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겨진 딸과 남편을 두고 우리 곁을 떠난 오주영씨를 이렇게 한번 다시 떠올려 본다. SNS 그녀의 홈페이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빈 자리를 아쉬워하고 있다. 한결 같은 사람들의 반응은 갑작스런 그녀의 소식에 놀라며 남기고 간 가족들에 대한 애틋함이었다. 다른 어떤 추모와 안타까움이 가능하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가 없는 시카고 한인사회도 그녀만의 환한 웃음과 푸근한 마음 씀씀이를 그리워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녀가 떠난 시카고는 분명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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