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인사이트] 현대 중국이 잊은 명대 가구 철학 “겸허해야 고귀하다”
명나라 가구에 깃든 중국의 품격

명나라 말기 ‘교의’ 200억원에 낙찰
중국 명대 고가구값이 고가라는 점을 주장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왜 한·중·일 3국 가운데 중국만이 의자와 같이 높게 앉을 수 있는 가구들을 사용했을까가 궁금하다. 역사적으로 한·중·일 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주거방식이다. 한국은 주로 ‘구들’, 일본은 ‘다다미’ 바닥에 앉아서 생활했다. 중국도 고대에는 ‘바닥에 꿇어 앉는(跪坐)’ 주거방식이었다. 이처럼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방식을 ‘석지이좌(席地而坐)’라 하며 여기엔 예치와 계급사회의 전통이 스며들어 있다. 지금 중국에서 사용하는 ‘주석(主席)’이라는 용어도 이러한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됐다. 즉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는 인사를 가리켰다.
이러한 ‘석지이좌’ 습속은 상나라와 주나라 시기부터 위진남북조까지 약 1700여년간 이어졌다. 그렇다고 생활 속에 가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이 시기 가구에 다리가 높은 탁자나 의자가 없었을 뿐이다. 중국인이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다가 의자나 침대 위로 올라간 것은 생활상의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불교와 호족의 영향이었다. 불교가 전래하자 다리를 내리고 앉을 수 있는 좌구인 접이식 의자 호상(胡床)이 중국에 들어왔다. 특히 위진남북조 시기는 한족과 이민족 간의 대융합 시기였다.
![황화리원후배교의(黃花梨圓後背交 椅), 강향단나무로 만든 둥근 등받이 접이식 의자. [사진 한인희]](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3/01/25/0cc1b674-f59e-42b9-b814-84274ef0ba1e.jpg)
불교의 전래는 가구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구 디자인에서 불교 건축양식인 곤문(壼門) 장식이 크게 유행했다. 명·청 시기 가구에 나타나는 말발굽형(馬蹄型)의 다리 선각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해 수미좌(須彌座) 조형 역시 명식 가구의 핵심적 디자인이 됐다. 탁자의 면과 다리 사이에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것과 같은 형태의 속요형(束腰型) 가구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간결·소박한 문인 정신 반영
명식(明式) 가구란 명대 및 청대 전기 강희·옹정·건륭 시기까지 제작된 가구들을 지칭한다. 이 시기 가구는 중국 전통 가구의 황금시대였다. 그렇다면 특별히 명대에 가구 문화가 발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명대 사회의 안정, 경제적 부유, 문화적 번영에 기인한다. 생활에서 담박하고 고상한 문화적 내함을 주요한 가치로 생각한 이어(李漁)·문진형(文震亨) 등 많은 문인 지사들이 직접 가구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 관료 지식인들은 명대 가구의 특징인 간결하고 소박한 가구 제작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중국 명식 가구는 쑤저우(蘇州)의 것을 최고로 친다. 청 도광(道光) 시기 발행된 ‘소주부지(蘇州府誌)’ 기록을 보면 “오중(吳中)의 인재가 우수하기는 실로 천하 최고다. 백공(百工)의 기예 가운데 기교에서 보면 이들을 절대로 따라오지 못한다.” 여기서 말하는 오중이 바로 쑤저우 지역이다.
![황화리남관모의(黃花梨南官帽 椅), 강향단나무로 만든 남방 지역 관모 형태 의자. [사진 한인희]](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3/01/25/1de8a9dd-1c3c-446d-860a-80733175dbf9.jpg)
우선 목재 자체의 재질, 무늬, 빛깔과 광택의 아름다움을 깊이 고려해 가구 자체에 조각이나 장식을 최소화했다. 이들 가구는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황화리(黃花梨)·자단(紫檀) 등 재질이 우수한 경목(硬木)으로 제작됐다.
![접이식 의자 ‘교의’는 중국 전통 가구 중 하나로 송나라 그림에도 등장한다. [사진 바이두]](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3/01/25/378aecb9-faba-42e4-9b6d-144b8661f87f.jpg)
셋째, 구조 분야에서 정밀한 맞춤을 중시했다. 짜 맞춤하는 장부의 구조가 핵심으로, 전통적인 짜 맞춤 방식인 순묘(榫卯, 숫장부와 암장부) 기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장부의 교합, 철제 못을 사용하지 않은 점,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넷째, 장식에서도 직선과 곡선 배치의 조화를 강조한다. 사각 안에 원이 있고, 원 가운데 사각이 있으며, 장단과 굵기 등 방향적인 측면에서도 대비를 강조했다. 이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숫장부와 암장부, 선과 면, 사각과 원은 중용과 함축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명품은 단순할수록 값도 높아져
![지난해 10월 소더비 홍콩 가을 경매에서 명나라 말기 접의식 의자 ‘황화리원후배교의’가 약 198억 5800만원에 최종 낙찰돼 중국 좌구(坐具)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 텅쉰왕 캡처]](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3/01/25/1c8aa619-f415-47b9-9480-5c14842e9bbf.jpg)
결국 명식 가구가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은 번잡한 장식이나 불필요한 가공을 하지 않고 간결함을 강조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고상하고 우아하면서도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 이렇게 볼 때 명식 가구는 서양의 가구가 추구한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을 강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박하면서 고아하고 간결한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명품은 단순할수록 고가이며, 최고 예술의 경지는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숨겨질수록 더 고귀하다.
이러한 전통에도 현재의 중국은 대외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행태를 자주 보인다. 자신들의 선조들이 보여준 겸허하고 안으로 깊이 침잠하는 명식 가구의 미적 가치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한인희 건국대 중국연구원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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