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 세트 팔아요" 이런 글만 671개, 명절마다 나타나는 그들
#. 대학생 김지연(24)씨는 이번 설 연휴 내내 서울 성산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다, 김 씨는 “고향에 내려가던, 여행을 가던 움직이려면 돈이 드는데,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라며 “연휴에는 평소보다 손님은 다소 줄어드는데 수당은 오르는 만큼 아르바이트를 해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 놓는 게 낫다”고 말했다.
#. 30대 직장인 유모씨는 회사에서 받은 선물 세트를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팔았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은 햄 종류의 음식이 담겨 있는데, 그냥 놔두기는 아까워서였다. 유씨는 “회사에서 알면 싫어하겠지만 좋아하지 않는 음식 먹기도 싫고, 지인에게 넘겨주기도 애매한 것 같다”며 “물가도 비싼데 쓸모없는 선물을 팔아 필요한 물건을 사기로 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몬이 최근 20~30대 남녀 143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8%는 올해 설 연휴에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고향 방문이나 여행, 휴식 대신 일자리를 택한 주된 이유는 생활비였다. 아르바이트를 계획한 이들의 63.8%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라고 답했다.
명절 선물의 중고 거래는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24일 오후 2시 기준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서 ‘명절 선물세트’를 검색하면 671개의 상품이 나왔다. 가격은 대체로 정가의 절반 정도 수준이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회사나 지인으로 받은 명절 선물세트를 중고로 파는 이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가격이 정가 대비 저렴한 만큼 수요도 있어 명절 선물세트 거래가 새로운 ‘틈새시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부진으로 총 소득은 크게 늘지 않는 가운데 고물가까지 겹치며 전체 가계의 실제 소득은 줄어 들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청년과 같이 비교적 소득이 적은 취약 계층은 물가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만큼 이들 입장에선 명절에도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벌이보다 큰 폭으로 뛴 물가 영향이 컸다. 지난해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6.3% 올랐다. 같은 해 8, 9월에도 5%대 물가상승률을 나타냈다. 기획재정부는 “해당 기간 명목 소득은 연 3% 올랐지만, 물가 상승세 지속 등의 영향으로 실질 소득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장기화한 고물가는 소득 감소와 함께 정신적인 스트레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지난해 11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경기도민 9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3.3%는 가계 가처분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88%가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강성진 교수는 “공공요금 인상이 이어지는 등 새해에도 물가가 들썩여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상당 기간 유지할 것”이라며 “청년층을 비롯한 취약 계층의 고통은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당장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연체 여부와 관계없이 신청 당일 최대 100만원을 빌려주는 ‘긴급 생계비 대출’을 오는 3월께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카드사, 캐피탈사 등이 대출 문턱을 높이며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취약 계층이 대출 보릿고개마저 겪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장 급전이 필요한 취약 계층의 돈줄이 막히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남현(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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