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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뛰어와 폐업 말리던 이대 명물…'빵낀과' 결국 문 닫는다

이화여대 명물로 꼽히는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이 코로나와 고물가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오는 5월 폐업 예정이다. 한때 줄 서야 먹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대 상권이 무너지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지난 18일 오후 한산한 가게 내부. 서지원 기자
“학생들이 딸같이 예뻐서 여기 이렇게 오래 있게 된 거죠. 코로나 터지고 문 닫으려고 했더니 재학생ㆍ졸업생들 뛰어와서 ‘안돼요’ 하기에 버텼는데... 이젠 정말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1997년부터 이화여대 앞 좁은 골목에서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빵낀과)’을 운영해 온 박춘희(72) 씨는 오는 5월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한 때 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끈 ‘이대 명물 가게’지만 요즘은 하루 평균 방문객이 손에 꼽힐 정도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확산하면서 학생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 데다 중국인 등 국내 관광객도 급감한 탓이다. 여기에 최근 물가가 치솟고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이 겹치면서 더는 가게를 운영하기 어려워졌다.

“지난해 대면 수업이 시작됐다지만 이대 상권은 여전히 방학이에요. 3년째...”

 지난 18일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촌기차역으로 이어지는 상가 거리에 '임대문의' 안내문이 줄지어 붙어 있다. 서지원 기자
코로나 방역 완화에도 대표적 대학가 중 하나인 이화여대 상권은 좀처럼 살아나질 않고 있다. 지난 18일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촌기차역 방면으로 길게 늘어선 1층 상가 43개 중 영업 중인 상가는 14곳뿐이었다. 전체의 32.6% 수준이다. 나머지 가게 유리창엔 임대문의 안내 글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신촌ㆍ이대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9.0%로 서울 평균(6.3%)보다 높았다. 또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는 563만2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808만9000명)의 20.1%다.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비중이다.

박씨도 자영업 한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대학가에서 장사하는 박씨에게 코로나보다 무서운 건 고물가였다. 5000원짜리 과일 샌드위치 2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프루츠칵테일 한 통 가격이 최근 2600원에서 3850원으로 48% 인상됐다. 5000원대이던 식빵 가격은 7490원으로 뛰었다. 이렇게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았지만 샌드위치 가격은 코로나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무작정 인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 지난해 배추값 폭등 때 김치볶음밥 가격은 1000원 올려 7500원이다.
이화여대 명물로 꼽히는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이 코로나와 고물가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오는 5월 폐업 예정이다. 서지원 기자

이미 몇 차례 폐업 위기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박씨를 버티게 한 건 학생들이었다. 가게 한쪽 벽면에는 “10년 만에 왔어요. 아직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99학번 졸업생, 딸이랑 같이 방문했어요. 20년 전 맛 그대로네요” 등 지난해 이곳을 찾아온 졸업생들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 상반기에는 재학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빵낀과를 살리자”며 구매 운동을 벌여 포장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일상에 치여 자주 오진 못하는 졸업생들은 전화나 문자로 박씨의 안부를 묻곤 한다. 박씨는 그런 학생들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는 “날이 좋으면 많이들 찾아와요. 그래서 '학생들 얼굴이나 한 번 더 보자'하는 마음에 5월 말까지는 하려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자녀 셋을 다 대학에 보낸 후 뒤늦게 시작한 장사라 가게에 오는 학생들이 그저 아들, 딸 같았다고 한다. 상호명처럼 처음엔 샌드위치 가게로 시작했는데 사법 고시생들이 얼큰하고 따뜻한 게 먹고 싶다고 해서 떡볶이를, 자취생인데 집밥이 그립다는 말에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다 보니 분식집이 됐다. 브랜드 식빵, 국산 김치 등 좋은 재료만 추구하는 데다 사장님이 친절하다고 소문이 나면서 ‘이대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4인 테이블 5~6개에 불과한 작은 가게다 보니 대기가 길어 못 먹고 돌아가는 경우도 적잖았다.
이화여대 명물로 꼽히는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이 코로나와 고물가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오는 5월 폐업 예정이다. 서지원 기자

학생들은 추억의 명소가 사라진단 소식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졸업생 이민주(27) 씨는 “학교 앞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질 때 친구들끼리 ‘빵낀과만은 안돼’라고 늘 외치곤 했다”며 “음식도 맛있지만 자상한 사장님에 대한 애정이 다들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졸업생 변정연(28) 씨도 “이 곳 김볶밥과 오레오쉐이크는 ‘국룰’이었고 학교 다닐 때 참 자주 갔다”며 “사장님을 보면 동네 아주머니 같은 친근감이 느껴졌는데 5월 전에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아쉬워했다.

가게가 폐업하면 학생들이 많이 서운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박씨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에게도 이 가게는 단지 생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나도 내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조금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언제나 영원한 건 없는 거니까...”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듯 했다.



김경희.서지원(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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