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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떠도는 땅

뺨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에 풍도는 정신이 번쩍 나 눈을 부릅뜬다. 아나똘리가 고개를 들고 입을 찢듯 벌린다. “하늘에 뜬 게 달이에요, 해예요?” “낮달이네요.” “피죽도 못 얻어먹은 얼굴이네요.”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와 열차 안에 고인 악취를 솎아낸다. “저기도 러시아 땅이겠지요?” “집이 한 채도 안 보이네요.” “사람도요.” “들짐승도 한 마리 안 보이네요.” “날짐승도요.” “그런데도 땅은 끝이 없네요.”
 
김숨 『떠도는 땅』
 
아직도 이런 얘기를 써주는 작가가 누군가 보니 역시 김숨이다. 인간 존엄의 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하며 주목받아온 그가 이번에는 1937년 극동 러시아 거주 조선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사건에 시선을 돌렸다. 고려인들의 역사, 디아스포라(이산)의 역사, 생존의 역사다.
 
소설은 형식적으로도 흥미롭다. 에필로그 7페이지를 제외하곤 전부 한 달여 이주 열차 안 상황을 그렸다. 그것도 대부분 화자가 불분명한 대화의 연속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증언을 나열하는 서술 방식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감염을 우려해 죽은 아기를 열차 밖으로 내던지는 비극적인 장면은 이렇게 묘사된다.
 


“아기를 열차 밖으로 버려요.” … “죽은 아기 하나 때문에 우리 다 죽을 순 없어요.” “우린 살아야 해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데요?” “왜요?” … “살았으니까요.” “살고 싶잖아요.”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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