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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베큠 청소기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게걸스레 먹어댄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먹이를 흡입하는 녀석은 배가 무척 고팠나 보다. 개미가 먹이를 부지런히 끌어들여 간직하듯, 놈은 폭풍같이 흡입한 그것들을 내장 깊이 간직하리라. 바닥에 떨어져 갈 길 잃은 물건들을 가리지 않고 포용해 자신의 몸에 잠시라도 품어준 베큠 청소기는 생각보다 아량이 넓은 것 같다.
 
어느 오후였다. 싱그럽던 화초가 온몸이 처진 채 늘어져 있었다. 나의 게으름을 탓하며, 화초에 물을 주려는데 야무지게 잡지 못해서인가 별안간 화분이 뒤집어지며 흙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졌다. 서둘러 베큠 청소기를 가지고 왔다. 묵직한 베큠은 카펫 깊숙이 얼굴을 묻고 커다란 입으로 순식간에 흙을 흡입해 카펫은 눈 깜짝할 사이에 깨끗해졌다.  
 
생각해보면 베큠 청소기는 청소할 때 쓰는 빗자루가 변한 것 같다. 빗살들이 모여 생긴 빗자루에는, 어쩌면 수많은 비의 입자가 엮여 있는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며, 오염된 허공을 순수한 자신의 몸으로 깨끗이 씻는 빗방울들. 혼탁한 허공을 맑게 정화시키는 비가 모여 빗자루가 되었고, 그리고 그것이 진화돼 베큠이 되었으니 녀석은 뼛속부터 청소를 목적으로 탄생하지 않았을까.
 
문어는 베큠 청소기를 닮았다. 자신이 감당할 수만 있다면 가리지 않고 먹이를 먹어치우는 문어는, 여러 개의 다리를 보자기처럼 펼쳐 사냥감이 빠져 나갈 수 없게 만들며 베큠처럼 먹이를 흡입한다. 생을 다하면 다른 물고기의 몸을 빌려 푸른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문어와, 언젠가는 지구별로 돌아가는 베큠에 저장된 쓰레기들.  
 


베큠 청소기에는 정(靜)과 동(動)이 공전한다. 쉬고 있을 때는 고요한 정(靜)의 선정에 들었다, 일이 시작되면 동(動)의 삼매 경지에 빠지는 베큠 청소기. 그리 보면 녀석은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는, 어묵동정(語默動靜)의 순간마다 선정 삼매에 드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삶을 사랑한 녀석은 허접스러운 쓰레기나 찌꺼기까지도 가슴으로 품으며 삶을 견뎌내는 것 같다. 아니 견뎌낸다기보다 녀석은 깨끗함과 더러움을 분별 짓는 경계를 초월해 분별없는 텅 빈 공(空)의 경계에 머무르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베큠 청소기는 영혼에서도 필요한 것 같다. 문어가 푸른 바다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바다 밑을 베큠질 하듯, 세월 속에 쌓인 순간의 잡념들이나 사악한 사념들을 영혼의 베큠기로 정리한다면 얼마나 깨끗해질까. 새로운 해의 깨끗한 출발을 위하여 혼의 베큠 청소기를 사용해야 할 듯 싶다. 그리 보면 언젠가 삶이 끝나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다음 생의 맑고 투명한 새로움을 위해 이생에 새겨진 용서 못 할 삶의 흔적이나 부정적인 기억들을 영혼의 베큠 청소기로 깨끗이 정화해야 할 듯싶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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