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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외로워도 괜찮아요

이기희

이기희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가슴이 벅찬 적이 언제였나.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동의 도가니에 온몸 적시며 심장이 힘차게 뛰던 적이 있었던가. 거북이 등처럼 말라버린 고목나무에 기대 소리 죽여 흐느끼던 외로움은 무엇이였나.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기로 독하게 맘 먹고도 또 다시 사랑하는 바보 같은 날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안주 삼아 밤이 깊도록 논쟁을 벌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막걸리가 이조주촌의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서 떨어지면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를 외며 뿔뿔이 흩어졌다.  
 
돌아가는 길, 비에 젖은 가로수에 걸린 달빛이 처량해도 가슴은 뜨겁게 달아 올랐다. 밤안개에 앞이 안보여도 날 밝으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비록 남루하고 잡히지 않는 환상이라 해도 희망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였다.    


 
절망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다. 두 손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짓이다. 절망은 포기가 아니라 마침표다. 포기는 다시 시작하면 된다. 실존 철학에서 절망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달았을 때 모든 희망을 체념하는 정신 상태라고 설명한다.  
 
외롭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바람 부는 날에는 뼈마디 마디마다 찬바람이 지나가고 눈 내리는 날에는 새하얀 눈송이가 비수처럼 심장을 파고 든다. 외로움은 슬픔처럼 생의 어느 순간도 스쳐 비껴가지 않는다. 참고 견디고 어루만지며 살아갈 뿐이다. 자식과 가족, 친구와 이웃이 있어도 외롭다. 군중 속에 있을 때도 외로움은 허무의 갈비뼈를 치고 달아난다.  
 
나는 자기 중심적 인간이다. 빌붙지 않고 청승 떨며 살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 사생활을 남에게 고자질 하듯 나열하고 광고하는 것이 싫고, 타인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꿰고 있는 것을 거부한다.  
 
잔칫상을 떠벌리게 차려도 좋아하는 몇가지만 골라먹는다. 사는데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다. 정예요원만 있으면 된다. 용건 없이 연락해 뜬금없이 ‘잘 지냈어’ ‘안 죽고 아직 살아있니?’라고 안부 묻는 친구 몇 명만 있으면 된다  
 
나이 들어 할 일은 줄이고 없애고 덜어내고 버리는 일이다. 물건도 사람도 버리면 편해진다. 고통과 아픔, 외로움은 오롯이 내 몫이다.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해 뜨는 풍경 바라보며 모닝커피 함께 마실 친구 있으면 외로움의 강 건널 수 있다.
 
외로워도 괜찮다. 낯선 길 모난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람이 허리를 감아도 혼자가 아닌 나를 바라보며 내게 안부를 묻는다.  
 
12월의 마지막 날 밤, 아무도 누더기 차림의 소녀 안나의 성냥을 사주지 않는다. 언 손을 녹이려고 성냥 하나를 켤 때마다 안나가 꿈꾸던 따뜻한 난로, 화려한 만찬,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 앞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산다는 것은 환영을 보는 것인지 모른다. 지구를 불태울 용기도 사라지고 미친 사랑의 상흔 지울 수 없어도, 성냥개비 한 개로 가슴 따스하게 데울 수 있다면, 외로움은 후 불면 날아가 버릴 민들레 홀씨 아닐런지.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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