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18조 몰린 회사채 시장…대기업 숨통 텄지만 윗목은 냉골
이뿐이 아니다. 신용등급 AA+인 포스코의 지난 6일 회사채 수요예측에는 2012년 국내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은 자금이 몰렸다. 기관투자자들이 3조9700억원어치 매수 주문을 냈다. 쏟아지는 주문 물량에 포스코는 발행 규모(7000억원)를 당초 목표(3500억원)보다 2배 늘렸다.
포스코 관계자는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에 발행액을 증액했다”며 “(이번 채권 발행은) 유동성 축소에 대비한 선제적 자금조달로, (확보한) 자금 일부는 채무상환에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삼성증권에 따르면 연초 이후 10일까지 포스코와 LG유플러스 등 기업 10곳이 1조6700억원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총 17조9550억원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연초 회사채 시장은 레고랜드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모습”이라며 “이달 수요예측은 물론 발행 규모도 지난해 1월 실적(8조7709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한동안 개점 휴업상태였던 회사채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건 투자 심리가 살아난 영향이다. 지난해 10월부터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가 가동되는 등 정부의 유동성 지원이 꺼지던 투자심리를 살려낸 불씨다. 시장에선 채권시장이 흔들려도 AA급 이상의 회사채를 매입할 채안펀드가 있다는 점만으로 ‘심리적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기업(발행사) 발행 수요와 큰손들(기관투자자)의 투자 수요가 맞아떨어진 것도 연초부터 회사채 시장에 큰 장이 열린 이유다. 기업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앞다퉈 회사채 발행을 앞당기고 있다. 지난해 은행과 회사채 시장에서 빌린 돈을 갚고, 경기침체를 대비한 비상 실탄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증권사의 채권 담당자는 “지난해 4분기 레고랜드발 자금경색으로 회사채 발행을 미뤘던 기업들이 새해부터 회사채 발행에 나서고 있다”며 “최근 회사채 투자심리가 회복되자 기업들은 발행 계획을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연초 효과와 맞물리면서 수급상황도 개선됐다. 일반적으로 1월은 기관투자자들이 새로 짠 포트폴리오에 맞춰 지갑을 여는 시기다. 특히 최근 회사채 투자위험(신용 스프레드)이 잦아들자 연 3%대 국채(3년물 금리 기준) 대신 연 5%대 금리(수익률)를 챙길 수 있는 우량 회사채를 포트폴리오에 담는 것이다.
문제는 채권시장의 온기가 AA급 이상 우량채에만 머물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은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견기업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이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를 우려하는 이유다.
박태근 신한증권 투자자문부 전문위원은 “올해 AA급 우량 회사채 위주로 투자 열기가 이어지면서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은기 연구위원도 “이달 회사채 발행은 AA등급 이상의 우량채가 99%를 차지할 것”이라며 “경기 둔화에 따른 실적 부진 등으로 A등급으로 온기가 파급되는데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택시장 침체로 건설사 신용도가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성원 나이스신용평가 IS실장은 “고금리와 집값 급락으로 위축된 부동산 경기에 건설사는 물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기업은 여전히 채권 발행에 따른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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