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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산에 오르는 사람들

“산에 왜 오르는가” 라는 질문에 한 산악인의 유명한 대답이 전해진다. “산이 거기 있기에”라는 말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산에 오르는 발길을 돕고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어떠한 이득도 없지만 무거운 등짐을 지고 땀 흘리며 산에 들어 정상을 향하는 사람들에게 비산악인들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산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세계 최고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찍은 사진들을 보아도 다를 바 없는 언덕 위 풍경 위에 빈 하늘만 있다. 때로는 눈보라 치고 드센 바람만이 몰아치고 있다. 다만 고집스럽게 그곳까지 걸어 올라간 고생길의 흔적이 가득한 한 인간의 모습이 자랑하듯 바람 속에 서 있다. 빈 하늘을 채우는 녹록지 않은 뜨거운 숨결이 보이는 듯하다.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있어 올라서며 발자국을 찍어내는 발걸음이 저 아래 동네 길에서부터 정상까지 도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가슴 뛰는 이야기다.
 
한국풍경 하나. 주말이나 휴일이면 웬만한 산은 가을 단풍색이 무색한 원색의 등산복으로 무장한 수많은 등산객으로 가득하다. 한국 사람들은 등산을 몹시 좋아하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한국인의 삶은 등산 그 자체인 것으로 보인다. 국토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지형 조건으로 이웃 동네 발길도 피할 수 없는 등산 활동이다. 평원지대의 나라에서는 조그만 언덕조차 대단한 산으로 여기고 애지중지하지만 그 정도의 산은 이웃 나들잇길에 불과한 한국 풍경이다. 역사 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많은 외세 침략을 견디어 낸 것이 한국역사였다고 한다. 첩첩 쌓인 산과 같은 어려움이 늘어선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에게 생존의 나날은 산을 넘고 넘는 세월이었을 것 같다. 산 넘어 산이라는 어떤 인생의 묘사처럼 끝없이 늘어선 산과 산을 타고 넘는 땀과 인내의 여정 속에 등산이 낯익은 것이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산에 오르기를 사랑하는 것 같다. 수많은 어려움과 국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어깨와 산 정상에서 심호흡하며 산 아래 풍경을 음미하는 시선이 비슷한 결을 가지고 등산 한국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올라보지도 않고 산이 너무 높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에게 오르고 또 오르면 어느 날 그 높아 보이던 꼭대기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삶의 자세를 가르칠 때도 첩첩이 놓인 산을 끌어와 도구로 사용한다. 산은 높은 뜻의 상징이 된다. 산은 평생을 걸고 올라야 하는 목적이다. 산은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시련이기도 하다. 산은 피할 수 없는 단련의 길이기도 하다. 산은 드디어 도달한 완성이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 되는 돌파구이다. 그곳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아무것도 없지만 마음으로 심장으로 믿음으로 볼 수 있는 귀중한 것을 갖고 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성취감이 있고 넓은 세상을 보게 하는 높이가 있다. 작은 동네  뒷산이라도 그 꼭대기에 올라서면 발길을 옭아매던 생활의 구속을 벗어나 시원한 시야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산 위에 올라설 때 주어지는 시원함과 해방감의 맑은 기운이 좋아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산을 갖고 있다. 그 산은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한 울창한 숲을 가질 수도 있고, 키 작은 관목이 펼쳐져 있는 밋밋한 언덕 구릉일 수도 있다. 아득한 높이를 가질 수도 있고 그저 작은 동산 같이 아담한 것일 수도 있다. 길을 잃게 하는 깊이를 갖기도 하고 한눈에 보이는 단순하고 쉬운 산일 수도 있고 사철 눈 덮인 모습이기도 하고 언제나 꽃이 만발한 부드러운 언덕일 수도 있다. 어떤 산을 마음에 담고 있던지 사람들은 그 산속에서 어딘가를 향하여 발걸음을 쉬지 않는다. 잠시 산자락에서 놀고 있는 듯 보여도 결국은 그 산을 극복하고자 노력을 기울여 산에 들어 나아간다.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있어 길가에 앉았던 게으름도 다시 시작하는 새해를 만나면 자세를 고치며 일어선다. 자기의 산을 다시 바라보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산 끝에 가 닿을 수 있을까 검색하고 궁리한다. 그리고 신발 끈을 조이고 언덕길을 오른다. 산에 오르는 사람이 된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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