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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그대는 내게 멀지 않구나

그대는 내게 멀지 않구나
[신호철]

[신호철]

 
새해에 나는 내게 용서를 빌었다네.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를 향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고 내게 용서를 빌었다네. 나를 자책하지 않겠으며, 삶이 힘들더라고 안고 가겠노라고 내 머리를 쓸어 주었다네. 잠도 잘 자고 눈을 뜨면 먼저 엎드려 당신께 기도하겠노라고 다짐했다네. 날 사랑하시는 당신을 나도 날마다 사랑하겠노라고 먼바다 같은 호수를 향해 고백했다네. 찬바람을 맞은 얼굴은 얼었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당신의 품에서 노는 한 마리 양이 되었다네. 호숫가를 걸었다네. 파도는 밀려 오는데 호숫가 얼음조각이 반짝였다네. 그대는 내게 멀지 않구나 생각했다네.

 
하려고 하기 보다 하지 않으려 했다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좋았다네. 흔들리는 나무가지에도 가끔 살포시 앉을 오늘도 엄지와 검지 사이로 노을이 졌다네. 그대 곁으로 이사를 갈까 생각했다네. 목재로 지은 따뜻한 신뢰를 가진 집으로, 들꽃을 가득 꽃피우는 언덕을 가진. 저음의 첼로가 나즈막히 공간을 담고 하루가 지고, 회색이 어울리는 실내 깊숙한 그림자 되어. 순수의 냄새란 그런 거라 생각했다네. 냄새라기보다 향기라 하는 편이 낫지만, 귀뜸의 시간은 짧고 여운은 늘 오래 마음을 헤집었다네. 그대 곁으로란 말을 온종일 중얼거린 날이 있었다네 / 여린 몸매, 사슴의 눈처럼 웃는 당신의 웃음이 좋았다는 말은 밑도 끝도 없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고 나는 더 묻지 않았다네. 하루를 지탱하는 끈이 팽팽히 힘을 쓰는 한 밤에, 프레지아가 시들은 창가에, 산 벚꽃 꽃잎이 눈처럼 날리는 언덕에, 흙이 내 뱉는 입김 같은 새벽이 멀리 오고 있다네. 그리움이 쑥쑥 자라는 먼동으로 오고 있다네.
 
 


저물어져 가는 시간은 친근하고도 서글프게 다가왔다  
빛의 꽃잎같이 아름다워서
제일 먼저 보고 싶은 얼굴이 되기도 하였으리라
이제야 겨우 내 손은 당신 가슴에 닿았는데
눈 밑까지 차오르는 물결은 어찌하라고
나의 자리로 돌아 와야만 하는 저녁이 싫었다
모든 게 지나치면 병이 된다는 말이 싫었다
 
 
꿈을 꾸었다
당신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꿈을 꾸고 싶었다
하나의 별이 내 몸 속으로 내려앉는 꿈을 꾸었다
이상하게도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가시가 된 당신
가까이 가려 해도 가까이 갈 수 없어
평생을 걸릴 수도 있는 푸른 멍이 되어 꿈속에 깨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내 안을 찌르는 원치 않는 아픔이 되어
숨을 쉬지 못하고 힘들게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다시는 하늘의 별을 꽃처럼 피우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꽃이 진 텅 빈 뒤란이 나를 보는 것이 싫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나를 밟고 가세요, 가슴을 누르고 가세요
엎드린 나를 허물고 가는 세월의 헛기침 소리
 
 
저물어져 가는 시간은 소리도 없이 빠르게 가는데
별 빛 한 조각 소리 없이 내 몸을 빠져 나가고 있다
하늘엔 부서져 흩어지는 당신의 숨결이 가득하여
 
 
제일 먼저 보고 싶은 얼굴이 되기도 하였으리라(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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