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동은 왜 빌라왕의 제물 됐나…청년 등친 ‘꾼’들의 술수
그러나 김씨는 2019년 집주인 강모(56)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강씨가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주지 않은 채 잠적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그로부터 3년 반 후인 지난 4일에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를 알리는 서울남부지검의 보도자료에는 ‘화곡동 무자본 갭투자 깡통전세 사기 사건 수사결과’라는 표제가 달렸다. 화곡동에서만 빌라 283채를 매수한 뒤, 전세 보증금 31억6800만원을 돌려주지 않은 이른바 ‘화곡동 빌라왕’ 사건이다. 검찰은 강씨에게 보증금 반환능력이 없음을 알고도 김씨 등에게 입주를 권유한 희망부동산 중개사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전세사기 피해를 본 이후로 2세 생각을 아예 접었다”며 “속이 타오르는 느낌에 새벽 2시면 계속 잠을 깼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힘들어 심리상담까지 받았다”고 그간 고통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경매에서 4번 유찰된 이 집을 낙찰받기 위한 절차를 준비 중이다.
그러다 보니 보증금 미반환 사고도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해 11월 기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파악한 상위 30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악성 임대인)의 지역별 통계에 따르면, 화곡동에서 발생한 전세금 미반환 사고는 737건으로 압도적 1위였다. 경기도 전체의 미반환 사고(788건)와 맞먹고, 서울 전 지역 사고(1769건)의 41%가 집중됐다.
화곡동(6.33㎢, 법정동)은 화곡본동, 화곡1~8동, 우장산동 등의 세부 행정동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는 우장산동(1.36㎢)과 화곡6동(1.11㎢), 화곡3동(0.53㎢)을 뺀 나머지 빌라 밀집 지역(3.33㎢)에서 대부분 나왔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빌라는 아파트처럼 시세가 일정하지 않아 값을 사기치기 쉽다”며 “더구나 신축 빌라들은 직접 가서 보면 깔끔하고 빌트인 가전까지 구비돼 있어 주택 임차 경험이 많지 않은 사회초년생, 1인 가구, 신혼부부 등 취약계층이 몰린다. 구조적인 전세사기 양산이 용이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곡동이 전세사기의 ‘그라운드 제로’로 주목받으면서 우울한 건 주변 부동산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화곡동 O부동산 여모(48) 사장은 “금리 인상과 화곡동 전세사기 보도 이후 손님이 뚝 끊겨 너무 힘들다”며 “장사를 접은 동네 부동산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인근 동네인 마곡동의 H공인중개사 사장은 “화곡동 토박이 부동산들은 빌라 전세는 돈 안 된다고 손 안 댄다”며 “대부분 젊은 분양사, 중개사들이 건물 8~9층에 사무소를 차려놓고 사회초년생들을 사기 매물로 끌어들이는 것 같다. 청년이 청년에게 사기치는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
당국과 피해자들의 관심은 ‘빌라왕’들에게 배후나 공범이 있는지로 쏠리고 있다. 사망한 40대 빌라왕 정모씨에게 보증금을 떼인 피해자 한모(31)씨는 “대출 이자가 부담된다고 하니,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이 ‘건축주가 이자를 지원해준다’고 꼬드겼다”며 조직적 사기를 의심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일 정씨 사건을 경찰에 의뢰했다. 현재 서울경찰청이 수사 중이다. 빌라·오피스텔 1139채를 무자본으로 사들인 후 지난해 10월 사망한 원조 빌라왕 김모씨에 대해서는 서울경찰청이 건축주, 분양대행업자 등 5명을 입건해 조사 중이다.
김정민.최서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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