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동거女 '시신없는 살인' 가능성…유죄 가를 결정타는
“동거녀 시신을 공릉천변 땅에 묻었다.” (이기영, 지난 3일 경찰 조사)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 송치된 이기영(31)이 동거녀 살인 혐의에 관해선 ‘시신 없는 살인’ 상태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열흘 넘게 계속돼 온 경찰의 동거녀 시신 수색 작업에 성과가 없어서다. 시신은 살인 범죄에서 가장 강력한 물증이다. 용의자가 자백했더라도 시신이 없으면 기소뒤 혐의 입증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택시기사 살해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던 중, 추궁 끝에 이씨로부터 지난해 8월 초 50대 여성 A씨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씨의 차량 뒷자리에서 발견된 혈흔이 자백의 지렛대가 됐다. A씨는 이씨가 거주하던 집 주인으로, 이씨는 A씨와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당초 경찰 조사에서 집에서 약 9㎞ 떨어진 경기 파주 공릉천변에 A씨의 시신을 유기했다고 했다가 지난 3일엔 그로부터 2㎞ 떨어진 한 다리 근처에 시신을 묻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커지는 ‘시신 없는 살인’ 가능성…이기영 유리해질까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동 통신기지국 정보를 분석한 결과 이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매일 수사관 150여명과 잠수사·수색견 등을 동원해 수색했지만 무위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경찰 관계자는 다만 “폭우에 시신이 유실되거나, (이씨가)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신이 없으면 피해자가 사망한 게 맞는지, 타살로 인한 음인지 등을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시신만 있으면 시반(屍斑, 사람이 죽은 후 피부에 생기는 반점)을 통해 사망 시각을 추정하거나, 상처의 형태에 따라 살해 방법 등 사건 당시 상황을 재현해낼 수도 있다. “시신을 없애면, 살인에 있어 최고의 증거를 없앨 수 있다”(토마스 디비아스 전 미국 컬럼비아 특별구 검사)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살인 사건에서 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큰 편이다.
이씨가 A씨 살해 시기와 수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백하긴 했지만, 형사소송법상 자백만으로는 증거 능력이 없어 (‘자백의 보강 법칙’) 유죄 입증을 위해선 자백을 뒷받침할 간접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김한규 변호사는 “결국 증거가 있어야 한다. 자백 갖고는 유죄가 안 된다”며 “시신이 없어도 사용된 흉기 등 증거가 나오거나, 목격자나 공범이라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의 혈흔 외에 범행 도구 등 다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시신 없었던 고유정, 간접증거로 무기징역
대법원은 2008년 3월 파기환송 선고를 내리면서 “증거관계나 검사 제출의 관련 증거, 원심 판시에 나타난 그 밖의 정황만으로는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해 의사를 가진 피고인 또는 공범자들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하였음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시체가 발견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 대하여 살인죄의 죄책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 사실이 추가적·선결적으로 증명되어야 함은 물론,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 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준.우수진(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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