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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5대 상권 유동인구 150만 늘었지만…“지갑은 안 연다”

최근 서울 명동에 관광객이 늘어났지만 일부 매장은 아직 비어 있다. 최선을 기자
서울 강남에서 옷가게·호프집을 연이어 운영하던 장모(43)씨는 석 달 전 가게를 정리했다. 지난 3일 만난 장씨는 “요즘은 택시 운전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세로 250만원을 내고 있었는데 건물주가 최근 유동인구가 늘었으니 15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했다”며 “도저히 맞춰 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같은 날 강남역 지하에 있는 한 옷가게 천장 위엔 ‘완전세일’이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마침 한 외국인 부부가 매장에 들어서며 바지 가격을 물었지만 2만9000원이라는 답만 듣고 그냥 나갔다. 주인 유모(53)씨는 “요즘엔 외국인 손님도 하루 두세 명은 찾는데 매출은 변함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동인구 늘자 “임대료 150만원 올려달라”

지난 3일 성수역 수제화 거리엔 사람이 거의 없다. 유지연 기자
코로나19 엔데믹을 맞아 부활을 꿈꾸던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다시 울상이다. 중앙일보가 이달 2~3일 명동·강남역·압구정·홍대·성수 등 서울 주요 5대 상권을 살펴봤더니 ‘다시 된서리가 내린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요컨대 유동인구는 늘었지만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표상으로는 ‘긍정 신호’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명동역·강남역·홍대입구역·압구정역·성수역에서 하차한 인원은 768만 명이었다. 〈그래픽 참조〉 이는 2019년 11월 951만 명의 80.8% 수준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11월(620만 명)과 비교해 23.9% 늘어났다.

‘유통 실핏줄’인 편의점 이용객도 늘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5대 상권에 위치한 점포에서 생수 매출이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2020년 12월엔 전년 대비 많게는 49.7%까지 줄었다가 지난달엔 최대 166.4%까지 신장했다. 편의점 업계에선 생수 매출은 유동인구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인식된다.

이런 변화에 ‘감 잡은’ 패션·뷰티 기업은 오프라인 매장을 다시 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유령도시’란 오명을 썼던 명동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패션·주얼리 브랜드 스파오와 로이드, 신발 편집숍인 ABC마트, 슈마커플러스 등이 지난해 말 문을 열었다. 아디다스도 이달에 대형 매장을 개장한다.

하지만 속내를 물어보면 상인 대다수가 어려움을 호소한다. 명동에서 13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홍순옥(61)씨는 “최근 방문객은 코로나19 이전의 70%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손에 쥐는 수익은 예전의 절반도 안 된다”며 “물가가 오르면서 사람들이 지갑 열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팝업 성지’로 떠오른 성수동 상권은 극과 극이다. 수제화 거리에서 구두점을 운영하는 한 60대 자영업자는 “찾아오는 손님 중에 실제 구매하는 경우는 10% 미만”이라며 “일주일에 세 켤레 파는 날도 많다. 성수동 30년 토박이인데 코로나 시기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나마 외식업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난 3일 저녁 홍대·성수 일대에선 소셜미디어(SNS)에서 소문난 맛집이나 카페 위주로 손님이 북적였다. 홍대 앞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는 “사람들이 코로나 기간 중 배달 음식에 물린 데다 SNS에 사진 남기기가 유행이라서 그런 듯하다”고 풀이했다.

가게 문을 다시 연 ‘리오프닝’ 이후 소상공인들은 오히려 어려움이 더 커졌다고 호소한다. 임대료와 인건비 상승, 공공요금 인상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MZ세대가 몰리는 성수동에서는 최근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권리금이 급상승세다. 서울숲부동산 양옥경 실장은 “이 일대 권리금이 최근 30평대 점포 기준 3억원대로 3~4년 전에 비해 2억원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작고 개성 있는 상점들이 성수동 남쪽 측면의 재개발 지역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이달부터 10%가량 오르는 전기요금도 시름거리다. 홍대 앞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박모(70)씨는 “월세·전기요금 등 월 유지비가 1000만원 이상 들어가는데 손님은 줄었다”며 “특히 택시 요금이 올라 10시 할증 전에 젊은 손님이 대부분 귀가하니 밤 장사는 죽을 맛”이라고 한탄했다. 외식업계는 인건비가 고민이다. 성수역 인근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는 양희법씨는 “지난해 말은 3년 만의 대목이었지만 식재료값과 인건비가 올라 허리띠를 졸라매는 중”이라고 말했다. 근처에서 우동집을 하는 오성섭 대표도 “요즘 점심 장사는 제법 되지만 인건비가 올라 간신히 수지를 맞추고 있다”며 “4년 전과 비교해 인건비가 월 100만원 이상 더 나간다”고 했다.

전문가 “정부, 전기료 감면 등 지원해야”

전문가들은 엔데믹 이후에도 자영업 상권이 되살아나지 못하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러다 오프라인 상권이 살아나지 못하는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영구적 위기)’가 올 수도 있다”며 “정부가 소비를 촉진하는 마중물을 넣어줘야 한다. 전기요금 감면 같은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전통시장이 존폐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시설 개선, 편의 확충을 해줬는데, 지금 골목상권 지원책은 거의 없다”며 “실효성 있는 재기 프로그램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백일현.유지연.최선을(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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