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삶] 좋은 궁수가 되려면
화살이 과녁을 맞추려면/ 이리저리 돌아갈 순 없다. 하지만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 그러니 네가 과녁일 때 나는 조금 위를 겨눈다.- 울라브하우게 시인의 ‘조금 위를 겨눈다’ 전문
울라브하우게의 시를 새해 첫 시로 읽는다. 과녁을 향한 궁수의 활 조준은 얼마나 민감할 것인가.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될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그러나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 과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복병으로 등장하는 변수들을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거리와 바람을 염두에 두는 일은 인생의 목표지향점을 겨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수이겠다.
새해에는 나도 활을 잡아보고 싶다. 과녁을 향해 전심을 다 하여 활을 당겨보고 싶다. 희망이라는 과녁을 향해 활을 당겨본 지가 언제였나 싶다. 거리와 바람을 기꺼이 수락할 줄 아는 궁수가 되어 어떤 목표이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과녁을 향해 활을 잡고 조준하던 시간이 내게도 아예 없지는 않았겠으나 명중에 이르지 못한 것을 바람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서풍 때문에, 예고 없이 불어온 북풍 때문에,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활은 빗나가고 늘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모습이었다.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는 시의 한 구절이 매사 이유가 많은 나에게는 통증처럼 스민다. 바람을 수락한다는 것은 바람의 변수와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기도 하나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이고도 중단 없이 나아가려는 의지일 것이다.
한 해의 시작에는 여러 다짐이 있겠다. 그 다짐들에 앞서 다시 한발을 날려보려고 새롭게 활을 잡는 궁수의 결기가 필요하겠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일상의 권태를 몰아내는 일부터 삶의 전반을 아울러 되짚어보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새해라는 시간은 말끔하게 정리를 끝낸 책상에 앉아 다시 뭔가를 써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네가 과녁일 때 나는 조금 위를 겨눈다”는 마지막 행은 나아갈 길의 목표를 조금 상향 조정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점점 왜소해지는 존재감, 협소해지는 관계성, 탄력을 잃은 삶의 동력으로 너무 낮은 곳에서 엉거주춤했다. 발밑 세계에서 뭉쳐지다 녹는 눈사람처럼 사고력도, 신앙심도, 희망도 모두 그랬다. 그 좁은 안에서의 티격태격이 누추하게 여겨진다. 그 좁은 안에서의 설전이 무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옹졸한 생각에 갇히고 야박한 인심에 묻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던 날들에 대한 반성을 끌어내는 시를 만난 새해 아침. 눈을 들어 멀리 내다보는, 생각의 폭을 넓혀 깊고 다양하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 좋은 궁수가 될 수 있다는 말로 이 시를 해석하고 싶다.
삶이 막막하고 점점 초라해진다고 생각될 때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건 뭘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구절의 시구로도 스멀스멀 힘이 솟기도 한다. 점점 작아지더라도 생각과 마음의 폭만은 작아지지 말자는 각오가 생기기도 한다.
울라브 하우게는 1908년 노르웨이 울 빅에서 태어나 1994년까지 그곳에서 과수원 농부로 평생 고향 마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문학은 장소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시공을 넘나드는 큰 스케일로 인간 실존을 투시하는 직관을 특징으로 한다. 젊어 한때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나 고통 중에도 품위를 읽지 않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정갈한 시를 써서 슬픔에 처한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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