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매일 하루씩 살기
계획은 일단 세우는 것으로 빛을 발한다. 한 달도 못 가 대부분 박살 날 걸 뻔히 알면서도 매년 그 짓을 반복한다. 안 빼먹고 산보하기, 적게 먹고 똥배 줄이기, 유튜브 안 보고 책읽기. 매일 착한 일 한가지씩 하기 등등…. 원대한 목표가 아닌 가장 쉽고 간단한 것부터 무너진다.
‘도대체 난 왜 이런 꼴일까’ 처음 몇 주는 지구력 희박한 성품에 자책골 넣으며 심란해하지만 ‘시작이 반이다’는 문구를 적용해 ‘포기하는 결심’에 눈감아 준다. 유년의 감나무에 매달려 대롱거리다가 떨어져 달콤한 감 따지 못했을 때처럼.
이제 더 이상 원대한 목표 세우며 작은 일에 목숨 걸고 새해를 맞지 않는다. ‘그토록 다짐을 했건만’ 지구는 공전을 멈추지 않았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칠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타인을 위해 정성으로 봉사한 일도 드물었고, 불태우던 사랑이 때린 배신의 강 건너 목화꽃잎처럼 흩어지는 상흔을 지우지도 못했다.
새해는 간단하고 쉽게, 거창한 구호가 아닌 아주 작은 일에 열중하기로 한다. 못 이룬 일들에 미련 갖지 않고 어리석지만 편하게 사는 방법을 간구한다. 목록 적어 달력이나 냉장고에 스티커 붙이지 않고 무개념 무심으로 편히 살 생각이다.
설국으로 뒤덮힌 길을 걸으면 발자욱이 남는다. 흔적이 남는다 해도 내 것인지 네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누군가 스쳐간 길일 뿐이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중략)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이해인의 ‘어떤 결심’ 중에서
시간을 닥달하지 말고 하루를 일년처럼 천년처럼 편하게 살기로 한다. 달력의 빈칸에 세월을 묶지 않고, 무심하게 돌보지 않았던, 되돌아 갈 수 없는 날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희망이 안 보여도 늘 기다리며 살던 그 사람처럼, 누구에게도 빌붙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새털 같이 여린 가슴에 하얀 손수건 접어 훈장을 달아줄 생각을 한다.
우왕좌왕 헷갈리며, 아득히 높은 곳 넘보지 말고, 무효된 지 오래된 티켓 들고 재상영을 기다리는 바보 되지 않기를 다짐한다. 사랑은 지나가는 휘파람 소리, 가을 언덕을 지나치면 달무리처럼 겨울 동굴 속에 숨어버린다.
새해엔 일단 ‘나’에게 충실하기로 한다. 타인에게 고정돼 있던 눈을 내게로 돌릴 작정이다. 눈을 90도 돌리면 옆이 보이고 180도 회전하면 내가 보인다.
달리기를 멈추면 잊고 살았던 모습 보인다. 헐떡이며 달리던 내가 보인다. 가슴 두드리며 슬픔 갈아먹지 말고, 후회는 적당하게 넘기고 나를 사랑할 생각을 한다.
매일 하루씩 살기로 한다. 너를 닮은 나를 사랑하며 살기로 한다. 사랑은 또 하나의 ‘나’를 찿는 일이다. 서로 다른 나무가 한 가지에 붙어 자라는 연리지처럼 그대를 온전히 받아드려 삶 속에 접목시키는 일이다.
불타는 욕망. 애끓던 작별마저 세월따라 흘러간 날은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기로 한다. 거창한 계획 세우지 않고, 달력에 촘촘히 적지 않아도 세월 속에 빛으로 내일이 다가오듯, 매일 하루 한 걸음씩 그대 곁에 다가가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