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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부담이 연 4200만원…탈원전 버틴 그들 "일감 온다" [르포]

2일 일이 없어 천막 창고에 보관하면서 녹슬고 삭아서 쓰기 어려워진 원자로 열처리 기자재. 창원=정종훈 기자
"원래 공장에서 쉴새 없이 돌리던 것들인데 이젠 삭아서 쓰지도 못 합니다. 그냥 쌓아둔지 벌써 5년째죠."
2일 경남 창원의 두산에너빌리티 공장. 원전 기업인 이곳의 천막 창고엔 얼룩덜룩 녹슨 기기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사내 협력업체인 길상엔지니어링의 원자로 열처리 기자재들이다.

이 회사 김용이(61) 대표는 "다시 작업에 쓰려면 전기로·보온재 등을 다 바꿔야 해서 10억원은 들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가 보여준 서류에 찍힌 지난해 열처리 관련 매출액은 6026만원. 2018년(14억6133만원)의 4% 수준에 불과하다. 39년째 원전 업계에 몸담으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처음 겪는 일이다.

두산 측에 원전 터빈 가공용 툴을 납품하는 성산툴스도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창원 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이 업체는 2015년 툴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이후 일감이 끊기면서 3~4년가량 공장 설비를 대부분 놀렸다. 이 기간 화력 발전소 등에 납품하며 겨우 회사를 운영했다.

이 회사 이인수(56) 대표는 "통장에 있던 사비를 털어 운영자금으로 쓰면서 지금껏 버텨왔다. 직원 월급도 3분의 2로 줄고 너댓명은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1997년 회사를 차렸다는 그는 "탈원전이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보다 더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2일 성산툴스 공장 작업장의 절반 이상은 일감이 없어 비어 있었다. 창원=정종훈 기자
창원 원전 생태계 아직 '겨울'…"일감 온다" 희망에 견뎌
원전 뿌리기업들이 모여있는 창원은 '탈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많은 업체가 문을 닫았고, 근로자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버티고 버틴 김용이·이인수 대표도 "작년 초까진 회사를 어떻게 문 닫을지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정부가 바뀌었지만, 창원에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날 두산 공장 내 주요 협력업체들의 사무실은 인기척 없이 휑했다. 김 대표는 "딱히 일감이 없으니 업체 80% 이상은 명맥만 유지한다"라고 했다.

그래도 이들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원전 생태계 복원'을 내세우자 마음을 다잡고 있다. "일감이 온다"는 희망이 생겨서다.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와 고리 2호기 등의 계속운전, 체코·폴란드 원전 수출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해 2조4000억원에 이어 올해 3조5000억원의 일감을 원전 분야에 투입하기로 했다. 원자력산업협회는 내년 89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기술개선과 컨설팅, 장려금, 인력 지원 등 원자력생태계 지원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두 회사는 지난해 시무식을 따로 안 했지만, 올해는 직원들과 시무식을 열었다. 이 대표의 2일 시무사는 "그래도 바빠지니까 얼마나 좋노"였다. 희망의 싹이 트면서 작은 것부터 달라지고 있다.
2일 공장 설비를 둘러보고 있는 성산툴스 이인수 대표. 창원=정종훈 기자
다만 원전 생태계 바닥엔 온기가 완전히 퍼지지 않았다. 최근 정부의 현장 간담회에서 '일감 등 지원받은 업체 손들어보라' 했더니 아무도 들지 않았다는 게 단적으로 보여준다. 탈원전 고비를 넘겼더니 고금리까지 찾아왔다. 잘나가던 시절 투자에 썼던 은행 대출 이자가 눈덩이처럼 돌아온다. 손에 잡히는 일감이 적으니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갚기 바쁘다.

김용이 대표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운영자금 빌려서 인건비로 다 주고 이자만 남았다. 기존 대출분 이자를 합쳐 한 달에 350만원씩 은행에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인수 대표도 "예전엔 저리로 자금 지원받았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다. 4년째 이자만 갚고 있다. 이율이 6~7% 이상 되니까 신규 투자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조금씩 활기 찾는 공장…"신한울 공사 재개에 기대"
성산툴스는 그나마 일감이 빨리 들어왔다. 두산에서 신한울 원전 공사용으로 선발주한 툴 제품을 만든다고 지난해 11월부터 조금씩 공장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말에 납품을 하고, 이달엔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중이다. 2일 찾은 공장도 절반 남짓한 구역에선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 대표는 "수주도, 계획도 제로였는데 3년여 만에 일감이 들어오니 분위기가 바뀐 게 체감된다. 기계가 다 멈춰 조용하던 공장에서 소음이 들리니 좋다"면서도 "정상 궤도에 올라서려면 내년은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길상엔지니어링은 신한울 3·4호기 공정이 본격화된 뒤인 2025년 하반기에야 열처리 일감이 들어올 것으로 본다. 그때까진 원전 정비보수 지원이나 SMR(소형모듈원자로) 시제품 공동 제작 같은 '가욋일'로 버틸 생각이다. 김 대표는 "어려움 대 희망 비율이 작년은 10대0이었다면, 올 하반기 지나면 5대5쯤 될 거 같다. 신한울 건설이 곧 재개되니 두산 측이 협력업체들에 사전 발주서도 주고 있다"라고 했다.
2일 천막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원자로 열처리 기자재를 둘러보고 있는 길상엔지니어링 김용이 대표. 창원=정종훈 기자
"이자 지원만 해줘도 더 버틴다" "고생한 직원 성과급 주고파"
이들은 조금만 더 버틸 힘을 지원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김 대표는 "정부는 사람 많고 큰 업체는 눈여겨보는데 작은 곳은 잘 안 본다. 하지만 실핏줄 끝에 있는 업체도 중요한 곳이 많고, 조금만 지원해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자꾸 올라가는 이자 지원만 해줘도 긴 시간 버틸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도 "원전 기업 죽는 건 한순간이지만 다시 살리긴 엄청 어렵다. 자금줄이 말라서 은행에 돈 빌리기도 어려운 원전 업체들을 집중 육성하고, 고정 이율로 2~3년 정도만 자금 지원해주면 생태계는 정상화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 봄이 올 거라고 믿는다. "잘만 풀리면 올 연말엔 고생한 직원들한테 성과급은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6년 만이죠."(이 대표) "가족 같은 직원들에 최소 급여만 줘서 미안한데 임금을 최소 30%는 올려주고 싶습니다."(김 대표)



정종훈(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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