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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日실패 따라하나…의사 늘려도 '문닫는 소아과' 해결 못한다 [이형기가 고발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전국 수련병원 소아청소년과는 2023년에 201명의 전공의를 모집했는데 33명만 지원했다. 이렇게 낮은 지원율(17%) 추세가 지속한다면 한국에서는 아이가 아파도 데려갈 병원이 없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은 전공의가 없어 소아의 입원 진료를 2월 말까지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산부인과나 외과와 같은 필수 진료과 지원을 기피하는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낮은 수가에다 의료사고라도 나면 의료진 과실이 아니어도 의사를 구속해 망신 주는 걸 이 사회가 당연하게 여긴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의사가 필수 진료과를 선택할까.
가천대 길병원은 전공의 부족으로 소아 환자 입원 중단을 결정했다. [가천대 길병원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은 필수 진료과 기피 현상이 초래한 부작용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간호사가 근무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긴급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했고 결국 사망했다. 서울아산병원이 국내에서 가장 환자를 많이 보는 병원이라는 걸 고려할 때 매우 충격적이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은 지역응급센터로 지정된 병원인 만큼 ‘응급환자를 24시간 진료할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 장비를 운영해야 한다’고 명시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거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뇌혈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데다 어렵게 의사를 구해도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은 적자를 보는 현행 의료수가 체계에서 무작정 병원을 나무랄 수도 없다.
이럴 때마다 정부는 ‘의대 입학 정원 확대’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이번에도 교육부가 보건복지부에 정원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인구 대비 의사 수를 근거로 들이댄다. 실제로 2019년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 명으로 OECD 평균(3.4명)보다 적다. 문제는 이 통계가 나라별 의사의 근무 조건이나 생산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라는 점이다.
인구 대비 의사 수보다 한 명의 의사가 얼마나 많은 지역의 환자를 진료하느냐, 즉 국토 면적 대비 의사 수가 더 중요하다. 10㎢당 의사 수는 한국이 12.1명으로 네덜란드(14.8명)와 이스라엘(13.2명)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또 의사 수와 관계없이 의료접근성은 한국이 가장 뛰어나다. 가령 2019년 한국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 17.2회로 OECD 최고였다. 평균(6.8회)보다 무려 2.5 배나 많다. 뿐만 아니라 한국 대부분의 병원은 당일 진료가 가능한데 이 역시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이런 마당에 한국에서 의사 수가 모자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백번 양보해 부족하다 해도 정부 주장처럼 의대 정원 확대로 필수 진료과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는 의사 수가 늘면 피부과 같은 선호 과 경쟁이 심해져 자연스레 경쟁이 덜한 필수 진료과로 유입되는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공급 확대로는 수요 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매년 전체 전공의 지원자 수는 모집 정원을 상회했지만 필수 진료과인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일반외과, 흉부외과는 항상 미달이었다. 이 숫자 하나만 봐도 정부 주장은 틀렸다.
의대 정원 확대는 오히려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 특성상 공급자가 많아지면 없던 수요를 창출하게 된다. 정부가 그렇게 염려하는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이 악화한다는 얘기다. 의대와 전공의 교육도 부실해질 게 뻔하다. 결국 폐교한 서남의대의 예처럼 급조된 신설 지방 의대의 열악한 수련 환경은 의사의 질 저하만 가져온다. 의사는 많아졌는데 의료 질이 떨어진다면 그 어떤 환자도 반길 리가 없다.
사실 의사 수 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의료의 지역 격차다. 지난 2020년 최혜영(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서울 종로구, 대구 중구, 부산 서구는 각각 16.3, 14.7, 12.7명인 데 반해 강원 고성군과 양양군은 0.45, 0.47명에 불과했다. 상급종합병원 43개의 절반이 넘는 22개가 수도권에 위치(2020년 기준)한다. 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도 수도권에 밀집돼 있다.
2019년 기준.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저자인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세상은 편평하지 않고 오히려 뾰족(spiky)하다고 지적했다. 뾰족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특정 지역, 즉 도시에 몰려 산다. 특히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과학자와 첨단 기술자는 더욱 그렇다. 우수한 의료 인력도 시설과 장비가 갖춰진 도시에 집중된다. 의료의 지역 편재는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현상이다. 이를 오판해 의사 수 증원과 같은 국소적 대책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이런 주장을 하면 일본 사례로 반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의사 수를 늘려 필수 진료과 기피와 의료의 지역 편재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최근 정책 방향을 수정했다. 일본 정부는 소위 ‘신(新) 의사확보 종합대책’에 따라 2008~2017년까지 의대 정원을 지속적으로 늘렸다. 지역정원제도를 둬서 의사 면허 취득 후 9년은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조건을 걸었다. 그 결과 2019년 일본의 의대 입학 정원은 942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필수 진료과 기피는 해소되지 않았다. 지역정원제도 역시 의료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지역 의사 양성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면허 취득 후 의료 취약지가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경제재정운영 및 개혁 기본방침(2018)’을 통해 의대 정원을 다시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무슨 일이든 몇 년 차로 늘 일본을 닮아가는 한국이 이것마저 또 따라 하려 하는데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코로나 19 팬데믹 초기에 사상 초유의 전공의 파업을 촉발했던 공공의대 설립은 더더욱 대안이 아니다. 자칫 지역 토호의 현대판 음서제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공정성 이슈를 차치하고라도 의료 질 저하를 막을 방법이 없어서다. 일정 기간 지역 근무를 마친 공공의대 출신 의사들이 일거에 수도권으로 몰려들어도 제어할 방법이 전무하니 의료의 지역 편재도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20년 8월 전국의사 2차 총파업 와중에 서울대병원 출입문 앞에서 전공의들이 의대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뉴스1
그렇다면 대안이 뭘까.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묘책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다. 이해당사자가 조금씩 양보하고 자기 몫을 부담하는 수밖에 없다. 우선 정부는 필수 의료, 그리고 취약 지역의 의료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불요불급한 의료 서비스에 섣달 그믐날 개밥 퍼주듯 보험 급여를 했던 선심 정책은 당연히 거둬들여야 한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싼 게 비지떡인데 돈은 조금 내고 양질의 서비스를 요구한다면 그건 도둑 심보다. 건강권이 천부의 권리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의료진이 국민에 무슨 큰 빚이라도 것처럼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면 안 된다. 종합병원도 돈은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 시스템을 갖추는 데 인색하게 굴면 안 된다.
십수 년이 걸리는 의사 양성에 눈곱만큼도 공헌한 게 없으면서 걸핏하면 "의사는 공공재"라며 자기 맘대로 부릴 수 있는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시민단체도 자기 몫을 부담하길 바란다. 어쩌다 문제라도 생기면 의사를 포토 라인에 세우는 일에만 열정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부자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없듯이 의사를 겁주고 명예를 훼손한다고 환자 병이 낫는 게 아니다. 우린 이런 상식적인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 모두 이젠 꼭 생각해봐야 한다.



이형기(c_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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