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日실패 따라하나…의사 늘려도 '문닫는 소아과' 해결 못한다 [이형기가 고발한다]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산부인과나 외과와 같은 필수 진료과 지원을 기피하는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낮은 수가에다 의료사고라도 나면 의료진 과실이 아니어도 의사를 구속해 망신 주는 걸 이 사회가 당연하게 여긴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의사가 필수 진료과를 선택할까.
이럴 때마다 정부는 ‘의대 입학 정원 확대’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이번에도 교육부가 보건복지부에 정원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인구 대비 의사 수를 근거로 들이댄다. 실제로 2019년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 명으로 OECD 평균(3.4명)보다 적다. 문제는 이 통계가 나라별 의사의 근무 조건이나 생산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라는 점이다.
인구 대비 의사 수보다 한 명의 의사가 얼마나 많은 지역의 환자를 진료하느냐, 즉 국토 면적 대비 의사 수가 더 중요하다. 10㎢당 의사 수는 한국이 12.1명으로 네덜란드(14.8명)와 이스라엘(13.2명)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또 의사 수와 관계없이 의료접근성은 한국이 가장 뛰어나다. 가령 2019년 한국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 17.2회로 OECD 최고였다. 평균(6.8회)보다 무려 2.5 배나 많다. 뿐만 아니라 한국 대부분의 병원은 당일 진료가 가능한데 이 역시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이런 마당에 한국에서 의사 수가 모자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백번 양보해 부족하다 해도 정부 주장처럼 의대 정원 확대로 필수 진료과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는 의사 수가 늘면 피부과 같은 선호 과 경쟁이 심해져 자연스레 경쟁이 덜한 필수 진료과로 유입되는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공급 확대로는 수요 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매년 전체 전공의 지원자 수는 모집 정원을 상회했지만 필수 진료과인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일반외과, 흉부외과는 항상 미달이었다. 이 숫자 하나만 봐도 정부 주장은 틀렸다.
의대 정원 확대는 오히려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 특성상 공급자가 많아지면 없던 수요를 창출하게 된다. 정부가 그렇게 염려하는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이 악화한다는 얘기다. 의대와 전공의 교육도 부실해질 게 뻔하다. 결국 폐교한 서남의대의 예처럼 급조된 신설 지방 의대의 열악한 수련 환경은 의사의 질 저하만 가져온다. 의사는 많아졌는데 의료 질이 떨어진다면 그 어떤 환자도 반길 리가 없다.
사실 의사 수 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의료의 지역 격차다. 지난 2020년 최혜영(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서울 종로구, 대구 중구, 부산 서구는 각각 16.3, 14.7, 12.7명인 데 반해 강원 고성군과 양양군은 0.45, 0.47명에 불과했다. 상급종합병원 43개의 절반이 넘는 22개가 수도권에 위치(2020년 기준)한다. 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도 수도권에 밀집돼 있다.
이런 주장을 하면 일본 사례로 반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의사 수를 늘려 필수 진료과 기피와 의료의 지역 편재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최근 정책 방향을 수정했다. 일본 정부는 소위 ‘신(新) 의사확보 종합대책’에 따라 2008~2017년까지 의대 정원을 지속적으로 늘렸다. 지역정원제도를 둬서 의사 면허 취득 후 9년은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조건을 걸었다. 그 결과 2019년 일본의 의대 입학 정원은 942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필수 진료과 기피는 해소되지 않았다. 지역정원제도 역시 의료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지역 의사 양성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면허 취득 후 의료 취약지가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경제재정운영 및 개혁 기본방침(2018)’을 통해 의대 정원을 다시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무슨 일이든 몇 년 차로 늘 일본을 닮아가는 한국이 이것마저 또 따라 하려 하는데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코로나 19 팬데믹 초기에 사상 초유의 전공의 파업을 촉발했던 공공의대 설립은 더더욱 대안이 아니다. 자칫 지역 토호의 현대판 음서제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공정성 이슈를 차치하고라도 의료 질 저하를 막을 방법이 없어서다. 일정 기간 지역 근무를 마친 공공의대 출신 의사들이 일거에 수도권으로 몰려들어도 제어할 방법이 전무하니 의료의 지역 편재도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싼 게 비지떡인데 돈은 조금 내고 양질의 서비스를 요구한다면 그건 도둑 심보다. 건강권이 천부의 권리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의료진이 국민에 무슨 큰 빚이라도 것처럼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면 안 된다. 종합병원도 돈은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 시스템을 갖추는 데 인색하게 굴면 안 된다.
십수 년이 걸리는 의사 양성에 눈곱만큼도 공헌한 게 없으면서 걸핏하면 "의사는 공공재"라며 자기 맘대로 부릴 수 있는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시민단체도 자기 몫을 부담하길 바란다. 어쩌다 문제라도 생기면 의사를 포토 라인에 세우는 일에만 열정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부자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없듯이 의사를 겁주고 명예를 훼손한다고 환자 병이 낫는 게 아니다. 우린 이런 상식적인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 모두 이젠 꼭 생각해봐야 한다.
이형기(c_project@joongang.co.kr)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