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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돌아와 앉다

“돌아와 앉다”라는 말이 2개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이” 시구가 주는 이야기와 “탕아 돌아오다”라는 성경 속 이야기다. 따뜻하게 지내던 집을 떠나 낯선 고장에서 살아내던 세월을 겪고 달라진 모습이 되어 떠났던 집으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다. 출가외인이라는 보내어진 인생이 되어 그때까지 살아오던 매일과 다른 생소한 하루에서 시작하여 일 년 이년 다른 생활의 그림을 그려나가며 산다는 것의 슬픔과 기쁨을 쌓아가던 시간을 뒤로 하고 외인이라 불리던 처지에서 다시 내인이 되어 가만히 앉아 거울을 보는 뒷모습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옷깃이 되어 방 안에 있다. 그 마음의 얼굴이 어떤 표정인지 알 것도 같고 혹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얼굴로 떠오른다.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을 살아야지 하는 욕심으로 잘 보살핌을 받던 집을 떠나는 의기양양한 발걸음이 시작한다. 아무도 그렇게 살펴주지 않는 세상에서 모두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맨몸이 되어 돌아보는 주변에는 어떤 따스한 손길도 없다. 그제야 따뜻했던 집을 떠올리고 “돌아가자” 마음먹는 어떤 인생의 처연한 얼굴이 떠오른다.
 
한국을 떠나올 때 어느 화가가 산수화 하나 그려 선물했다. 산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그림에 작은 배 하나 있어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 글귀가 좀 이상했다. “고향으로 가는 뱃길.” 이제 고향이라는 데를 떠나 나름 다른 소원을 가지고 발걸음 떼는 사람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떠나와 살면서 그 그림은 뒤에놓이고 바라볼 기회가 없었다. 어느 만큼 세월이 지난 지금 가끔 생각나던 그 그림을 꺼내보며 “고향으로 가는…”이라는 글귀를 가만히 읽어보며 또 다른 의미로 그 글을 열어보게 되었다. 별로 사무치게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것도 아닌데 고향으로 간다는 심정이 색다르게 젖어온다. 돌아간다는 의미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지며 그냥 살아내던 어느 시간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다.  
 
떠나온 곳으로 혹은 첫발을 내딛던 시간으로, 시작하던 시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분위기를 만든다. 한 해의 끝자락에 들어서면 그래서 세파에 뛰어놀던 가슴이 진정되고 무엇을 바라보고 뛰어왔을까 살펴보게 된다. 혹은 상처받았던 심령이 위로를 찾아 고향 집에 들어서는 발걸음처럼 주저되기도 하고 기대에 가득하기도 하고 어떤 대접이 기다릴까 두려워하는 시선이 되기도 한다. 돌아갈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음은 다행이다.
 
앞길은 보이지 않고 돌아갈 길도 없다면 돌아와 앉는 행복은 가질 수 없다. 그렇게 마음 놓고 앉을 수 있는 아랫목이 있다면 어떤 비바람 속에 놓여도 행복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다. 돌아와 앉는 기분이 드는 시간, 돌아와 앉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음악, 그렇게 만드는 언어, 그림, 풍경, 공기, 향기 어떤 사람 등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귀한 것들이 있어 돌아가야 할 시간에 발길을 돌리게 한다.
 


돌아와서 거울을 본다는 것이 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돌아온 탕아를 기다리는 따스한 눈길과 손길이 있었다는 것이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거울 속에 얼굴은 어떤 얼굴인가. 그 얼굴이 무슨 이야기를 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오래도록 거울을 마주하게 한다. 돌아온 자의 손을 잡아주는 이는 누구인가. 저만치에서 비웃는 표정은 누구인가. 다가오며 웃음으로 반기는 이는 누구인가. 세상의 때를 잔뜩 붙이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고 돌아온 용기를 받아주는 이는 누구인가. 지금 돌아와 앉는 마지막 달 마지막 날짜를 맞이하며 일기 끝장을 적는 심정이 되어 많이 겪고 많이 던져버린 사람의 몸짓으로 단정하게 앉아본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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